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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2-08 10:00
이병철 회장의 종교 질문, 유란시아서의 가르침 (전문)
 글쓴이 : 관리자
조회 : 7,788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

       유란시아서를 바탕으로 한 답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 시대의 대한민국에서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그룹의 창업자인 고 이병철(1910-1987) 회장의 비중은 대단히 지대합니다. 그가 20여년 전 지병으로 타계하기 바로 전에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문제인 종교에 대한 질문을 어느 천주교 신부에게 건넨 것이 최근에 알려져 화제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러한 질문이 평범한 일반적인 질문이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한 시대에 큰 영향을 끼친 인물이 인생을 정리하는 시점에, 그의 전문 분야가 아닌 종교에 대하여 자기 자신을 내던지며 절실하게 물어온 질문이기에, 그 의미가 대단히 깊습니다.

이 질문을 간접적으로 전하여 받은 천주교의 한 신부가 어느 신문과의 대담에서 이 질문에 대하여 천주교의 기준에서 답변을 한 기사가 언론에 실린 적이 있으며, 그 신부는 이를 보다 깊이 있게 다룬 답변을 단행본으로 만들어 작년 연말에 발행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울러 이들 질문에 대하여 신문 대담을 읽은 일부 기독교인이 그들의 의견을 피력한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근본적인 질문에 대하여 유란시아서(The Urantia Book)의 입장은 어떠한지, 이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 어떻겠냐는 어느 분의 의견이 있었습니다. 한 명의 독자에 지나지 않는 저가 유란시아서의 관점을 제시한다는 것은 능력 밖의 일이겠으나, 다만 이들 질문에 대한 대답을 유란시아서에서 찾아 전달할 수는 있을 것으로 판단되어 제 나름대로 여기에 그 답변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자기가 믿고 있는 종교에 바탕을 두고 주관적으로 판단을 하는 성향이 깊으며, 이미 몰두하고 있는 신념과 관념에서 벗어나기는 대단히 어려운 존재입니다. 따라서 자기 앞에 새롭게 주어지는 이론의 옳고 그름과는 상관없이, 다른 이론과 주장에 대하여 이해하려는 시도의 노력도 하지 않은 채 거부하는 타성이 있음을 우리는 주위에서 흔히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원천적인 질문에 대하여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에 바탕을 두면서 새로운 해답을 제시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어떤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이 이들 주제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개념을 정리하고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한편, 만약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에 관심을 가진 분이 이글을 접할 경우 그 이해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이 답변을 시도하여 봅니다.

이글에서 인용되는 유란시아서와 관련된 새로운 용어와 개념은 유란시아서 만이 제시하는 특별한 것들로서, 책을 접하여 보지 않은 분들은 그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어려울 것임을 알기에, 이 점에 대하여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유란시아서의 내용에 대한 이해와 도움을 위하여 글 아래에 관련된 영어 원문을 참고로 싣습니다.

이들 질문에 대한 천주교와 일부 기독교인의 답변은 인터넷에 게재된 내용을 참고로 일부 인용하였습니다.

질문은 인간에 대한 종교적 관점에 대한 것으로서 모두 24 개입니다.

1. 신(하나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신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드러내 보이지 않는가 ?


2. 신은 우주만물의 창조주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진화과정의 산물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 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이 아닌가 ?


4. 언젠가 생명의 합성, 무변장수의 시대가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5.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6. 신은 왜 악인을 만들었는가 ?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7.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죄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죄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


8.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란 것을 어떻게

    증명할수 있나 ?


9. 종교란 무엇인가 ?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10. 영혼이란 무엇인가 ?


11.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


12.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


13.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일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


14. 인간이 주은 후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


15.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


16.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을 약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했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17.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


18.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19.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 예 : 폴란드 등 동구제국, 니카라쿠아 등


20.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가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


21.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다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


22.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23.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

     것인가 ?


24.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


   여러분들도 위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한번 생각하여 보시기 바랍니다.

[출처] 이병철 회장의 종교에 대한 질문과 유란시아서 답변 |작성자 들 꽃



( 질문 1 )

   神(하느님)의 존재를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神은 왜 자신의 존재를 똑똑히 들어내 보이지 않는가 ?


: 질문자가 이 질문에서 말하는 신(神)은 우주를 창조하고, 이를 주관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이러한 신이 있다면, 우주가 하나의 통일된 질서 속에 움직이고 있음을 고려하여, 전통 카톨릭과 기독교는 유일신의 개념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신을 “하느님”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우리 민족이 전래적으로 옥황상제와 같은 절대자가 “하늘” 어디에 있을 것으로 믿는 사상이, 새로 도입된 기독교와 접촉하지 않은 분들이 주로 그렇게 부르고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질문자는 이 전통적 용어에 익숙하여 '하느님"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기독교 성경에서 언급하는 영어의 God 은 유대교에서 시작하여, 천주교를 거쳐서 기독교까지 이어오면서 추구하는 유일신의 개념으로서, 이 개념은 창조주가 “하늘“에 있다는 개념보다는 오직 한분이라는 개념과 가까움으로 “하나님”이라고 부르게 되었으며, 따라서 대부분의 기독교도 하나님이란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신과 하나님으로 함께 사용하겠습니다.

위의 질문은 일단 신이 있다면 왜 자기 자신이 존재함을 인간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느냐는 의문입니다. 이 질문을 다시 되돌리면, 신이 존재하지 않으니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니냐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신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종교인들은 왜 그러한 존재를 비종교인이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증명해 보이지 못하느냐는 추궁입니다. 긴 인류 역사상 신의 존재는 그 무엇보다도 비중이 큰 주제이면서도 이를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는 인간의 처지에서 나온 답답함의 절규로 이해됩니다.

일반적으로 종교인들은 신은 인간과 다른 차원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병철 회장의 질문을 언론에 소개한 카톨릭 신부는 그의 답변에서, “우리 눈에는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는 있다. 소리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감지할 수 있는, 알아들을 수 있는 소리의 영역이 정해져 있다. 가청 영역 밖의 소리는 인간이 못 듣는다. 그러나 가청 영역 밖의 소리에도 음파가 있다. 소리를 못 듣는 것은 인간의 한계이고, 인간의 문제다. 신의 한계나 신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의 시각과 청각의 제한 때문에 신의 존재를 알지 못한다는 이론입니다. 신의 존재를 증명하지 못하는 사유를 인간의 신체적 물리적 제한성 때문이라고 해명하고 있습니다.

한편 기독교 계통의 한 종교인은, 신은 오직 믿음으로 만 알 수 있으며, 믿는 자에게 신은 절대적 존재로서 그의 존재에 대하여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부분의 종교인들은 이 대답에 동의할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은 신을 눈으로 보듯이 그 존재를 증명하여 달라는 질문자의 요구를 만족시키기에는 너무나 거리가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이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려면 신의 존재를, 신은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가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종교인과 신학자들이 이를 설명하여 왔으나, 그 설명이 만족스럽지 못하였던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는 아마 신이란 감각으로 알 수 있는 물리적 증명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역설적으로 신의 존재가 증명이 될 수 있다면, 신은 이미 어느 제한된 틀 안에 속하게 됨으로, 절대적인 무한한 신이 될 수가 없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간으로 있는 한 신을 완전히 알지 못할 운명에 처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유한한 인간에게 무한의 개념을 가르치는 종교가 존재하여야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신을 눈으로 보듯이 증명하여주지 못함은 유란시아서(The Urantia Book)도 예외가 아닙니다.

다만 유란시아서는 지금까지 신을 규정한 그 어느 개념보다 구체적으로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으며, 그를 알 수 있는 길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에서 설명하는 신의 개념은 너무 방대함으로 이를 여기에 언급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으로 생각되며, 다만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는 길과 관련된 문장만을 몇 개 알아보겠습니다.

( )의 숫자는, 유란시아서의 편, 장, 절을 의미합니다.


( 1:2.4 ) 
  
   하나님
의 존재는 과학적 실험이나 논리적 유추에 의한 순수한 이성으로서는 결코 증명할 수 없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의 경험 안에서만 알 수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실체에 대한 진정한 개념은 논리적으로 합당하며, 철학적으로 받아들여질 만하며, 종교에게는 핵심이며, 개별 성품존재의 생존을 위한 희망에서는 필수불가결이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그의 존재 사실을 경험한다. 하나님을 아는 그런 사람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긍정적인 증거를 개인적인 경험으로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다른 사람에게도 이를 전할 수 있다. 하나님의 존재는 하나님을 인식하려는 인간의 마음과, 우주의 아버지가 무상의 선물로 인간에게 내려주어 인간 지성과 함께 살고 있는,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인 생각 조율자와의 접촉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그를 보여줄 가능성이 없다.

(5:2.3)

   그러나, 신성한 하나님이 나타나 계심은 자연 안의 어느 곳에서도, 또는 심지어 하나님을 알고있는 유한생명의 생활 안에서도, 당신이 파라다이스생각 조율자, 인간 안에 함께 살아가는 신비의 관조자와 하는 적극적인 교류에서처럼 그렇게 완전하고 확실하게 발견될 수가 없다. 우주 아버지의 영이 너 자신 마음 안에 살아 계시는데, 멀리 하늘 위에 계시는 하나님을 꿈꾸는 것이란 얼마나 잘못된 실수인가 !

(117:6.9)

   인간 존재에 있어서 하나님이 가장 큰 체험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은 너무 자주 잊어버린다. 다른 경험들은 그 성격이나 내용에 있어서 제한이 되어 있지만,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생명체가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 이외에는 그 한계가 없으며, 그리고 바로 이러한 체험 그 자체가 체험의 능력을 향상시킨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는 모든 것을 찾고 있다. 하나님을 발견하면, 모든 것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을 추구함은 사랑을 아낌없이 내려줌이며, 새롭고 더 큰 사랑이 주어짐을 놀랍게 발견하게 된다.

( 196:3.21)

   하나님은 단지 인간의 이상주의가 만들어낸 작품이 아니다.; 그는 동물을 초월한 그러한 모든 통찰과 가치의 바로 그 근원이다. 하나님은 진선미에 대한 인간의 개념을 하나로 통일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가설이 아니다.; 그는 사랑의 성품으로서 그로부터 이 우주에 펼쳐지는 모든 현상이 비롯된다. 인간 세상의 진리, 아름다움, 선함은 파라다이스의 실체를 향하여 상승하는 유한생명의 체험이 영적으로 증가함에 따라서 하나로 통일된다. 진선미의 통일은 오직 하나님을 알아가는 성품존재의 영적 체험 안에서 실현될 수 있다.


: 또한 책의 어느 부분에서는 “인간이 가장 높은 실체의 대상인 하나님과의 접촉은 오직 그를 아는, 그를 공경하는, 그의 아들임을 깨닫는 순수한 주관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문장이 책의 어느 부분에 있는지 찾지를 못하였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신의 존재를 객관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노력하면 그를 알 수 있고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유란시아서는 특히 인간 개개인에게 그를 영적으로 돕는,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을 지닌 하나의 조각 편린(fragment)인 생각 조율자(Thought Adjuster)가 인간 안에 주어져 있으므로, 인간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이 조율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그와 교류함으로서 신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므로 신을 아는 길은 생각 조율자와의 접속이 유일한 길이며, 그 존재와 접속하려면 먼저 영적인 성장이 우선적인 것으로서, 이를 위하여 물질적으로, 지적으로, 영적으로 노력하여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그러한 노력으로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하여야만 인간이 죽은 후, 다음 세상에서도 계속 생존을 지속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유란시아서가 말하는 생각 조율자와의 접속이란,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게 여겨집니다. 믿음이란 영성의 성장을 의미하며, 이에 따른 하나님, 즉 생각 조율자 대한 인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결론적으로, 신이 없다고 판단하는 무신론자들은 영적인 영역을 부인함으로서 영적인 성장을 추구할 이유와 의지가 없을 것이므로, 안타깝게도 신을 체험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인간에게 본능적으로 가장 긍정적인 의미와 가치의 대상인 진선미(truth, goodness, beauty)를 적극적으로 추구하는 인간에게는, 그 원인과 근원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신을 만날 수 있을 가능성은 확실히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이해로는, 하나님은 우리 인간이 역사적으로 인식하여온, 기존 종교적 이론으로 이해하고 있는 그러한 존재가 아닐 것으로 추정합니다. 다만 신과 인간과의 관계를 가장 비슷하게 인간이 이해할 수 있는 최대의 개념이 “아버지아들의 관계”이기 때문에, 가톨릭과 기독교뿐만 아니라 새로운 계시서라는 유란시아서까지도 신을 “하나님 아버지(God the Father)" 또는 “우주의 아버지(Universal Father)"라고 통칭하게 된 것으로 이해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란, 즉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의미하며, 아버지가 부모의 대표이듯이 아들을 자식의 대표로서 표현한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부모와 자식이 유전자로 연결되어 있어서 서로 본능적으로 사랑하는 특별한 관계가 있듯이, 지적 생명체인 인간은 하나님이 그 원천인 성품이란 특별한 요소를 서로 공유함으로서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음을 고려하여, 부모 자식처럼 서로 사이를 연결하는 유사성을 기준으로 이러한 관계의 용어가 도입된 것으로 판단하면 무난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의 진정한 실체는 인간이 영적인 성장을 하여감에 따라서, 부모 자식 사이의 개념을 넘어서 그 본질에 좀 더 가까운 실체를 점차 이해하여 갈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유란시아서의 특징 중 하나가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의 확대를 위한 설명이 자세히 주어져 있다는 점입니다.

유란시아서는 인간이 영혼의 성장을 위하여 나아가는 길은 무한한 하나님을 알아가는 길고도 먼 여정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1:2.4 The existence of God can never be proved by scientific experiment or by the pure reason of logical deduction. God can be realized only in the realms of human experience; nevertheless, the true concept of the reality of God is reasonable to logic, plausible to philosophy, essential to religion, and indispensable to any hope of personality survival.

5:2.3 The divine presence cannot, however, be discovered anywhere in nature or even in the lives of God-knowing mortals so fully and so certainly as in your attempted communion with the indwelling Mystery Monitor, the Paradise Thought Adjuster. What a mistake to dream of God far off in the skies when the spirit of the Universal Father lives within your own mind!

117:6.9 Men all too often forget that God is the greatest experience in human existence. Other experiences are limited in their nature and content, but the experience of God has no limits save those of the creature's comprehension capacity, and this very experience is in itself capacity enlarging. When men search for God, they are searching for everything. When they find God, they have found everything. The search for God is the unstinted bestowal of love attended by amazing discoveries of new and greater love to be bestowed.

196:3.21 God is not the mere invention of man's idealism; he is the very source of all such superanimal insights and values. God is not a hypothesis formulated to unify the human concepts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he is the personality of love from whom all of these universe manifestations are derived. The truth, beauty, and goodness of man's world are unified by the increasing spirituality of the experience of mortals ascending toward Paradise realities. The unity of truth, beauty, and goodness can only be realized in the spiritual experience of the God-knowing personality.

[출처] 이병철 회장의 종교 질문(1). 유란시아서의 답변|작성자 들 꽃



( 질문 2 )

   神은 우주만물의 創造主라는데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


:
이 질문은 위 (1)번의 질문과 연결된 내용으로서 (1)번의 답변을 참고하여야 합니다.

왜냐면 신을 우주만물을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존재로 전제를 한다면, 이 질문은 신의 존재 여부와 연결이 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신의 존재 여부를 떠나서, 우주 자체의 발생을 기준으로 이 문제를 생각하여 볼 수도 있겠습니다.

저가 사상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철학자가 아님으로 우주의 발생에 관한 이론은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상식적인 방식으로 접근하자면, 우주의 발생에 대하여,

- 누가 태초에 만들었다.

- 그냥 처음부터 무엇이 있었는데 이것이 변화한 것이다.

- 무엇이 있었는데 이를 누가 변화시켜 만들었다.

등으로 추정을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가설에서 말하는 "누가"에 해당하는 존재가 "신"이 될 수가 있겠습니다.

한가지 고려할 점은 이 "누가"가 있었다면, 그는 우주를 창조한 존재로서, 즉 창조의 활동을 하는 "의지"와 "개념"을 지닌 존재로 추정하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즉 의지를 지닌 그 무엇이 창조주, 신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저가 알기로는 의지를 지닌 창조주가 우주를 만들었다는 개념 쪽이 종교의 근본인 반면, 누가 만든 것이 아니라 본래부터 있던 것이 변화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동양의 "도교" 쪽에 가까운 사상이 아닌가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가지를 결합한다면, 즉 본래부터 의지를 지닌 존재, 우주의 근원적 존재 그것이 창조주라는 생각을 유도할 수도 있겠습니다.

유란시아서는 하나님과 창조된 세계와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1:0.1)

   우주의 아버지는 모든 창조의 으로서, 모든 사물과 존재의 첫째 근원 중심이다. 하나님을 먼저 창조주로, 그 다음은 통제자로, 마지막으로 무한한 유지자로 생각하라.

(1:2.1)

   하나님은 영의 세계에서 가장 기본 으뜸이 되는 실체이다. 하나님은 정신의 영역에서 진리의 근원이다.; 하나님은 모든 물질의 영역을 두루 보살피신다. 모든 지적인 존재에 대하여 하나님은 성품이며, 우주의 우주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영원한 실체의 첫 근원 중심이다. 하나님은 인간과 비슷하지도 않으며 기계와 같지도 않다. 첫 아버지는 우주의 영이며, 영원한 진리이며, 무한한 실체이며, 아버지의 성품이다.

: 위 설명은 너무나 간략한 표현으로서, 책 전체를 읽지 않고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간략히 검토한다면, 하나님은 우주의 모든 것이 생겨나고, 진행되고, 앞으로 일어남에 대한 그 원천이며 중심이란 설명입니다.

유란시아서는 설명에서, 이 우주를 구성하는 차원으로서, 물질적인 것(material)과 아울러 정신적(마음)인 것 (mind), 그리고 영적인 차원(spirit)이 있음에 덧붙여서, 성품적인 차원(personality)이 함께 있는 것으로 설명하며, 이 성품은 지능과 의지를 가진 생명체가 활동을 할 때 존재하게 되는 것으로서, 지적인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성품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차원에는 생명체의 정신적 활동으로 생성되는 생각, 개념, 가치 같은 것들이 이 차원에 포함됩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은 이 모든 네 가지 차원의 근원이며, 움직임이며, 그 존재 목적이라고 언급합니다.

특이한 점은 이러한 성품들 가운데, 하나님은 우주의 지적 생명체들에 대하여 “아버지”의 입장이며, 자세라고 강조함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위 질문 (1)의 답변에서 이미 언급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 표현을 인간에게 대한 신의 위치를 이해시키기 위한 과도기적인 설명에 지나지 않으며, 신은 아버지의 개념을 너머서 모든 성품의 집합이며, 그 절대적 가능성이라고 추정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개념 확대의 가능성은 책의 많은 부분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1:0.1 The Universal Father is the God of all creation,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all things and beings. First think of God as a creator, then as a controller, and lastly as an infinite upholder.

1:2.1 God is primal reality in the spirit world; God is the source of truth in the mind spheres; God overshadows all throughout the material realms. To all created intelligences God is a personality, and to the universe of universes he is the First Source and Center of eternal reality. God is neither manlike nor machinelike. The First Father is universal spirit, eternal truth, infinite reality, and father personality.



( 질문 3)

   생물학자들은 인간도 오랜 進化過程의 産物이라고 하는데, 신의

   인간창조와 어떻게 다른가 ?

   인간이나 생물도 진화의 산물이 아닌가 ?


: 이 질문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에 대하여, 성경에서 서술하는 신의 창조론과 과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는 진화론 가운데 어느 것이 옳으냐는 물음입니다.

성경의 무결점 주의를 주장하는 독실한 기독교인들은 성경에 적히어 있는 그대로 신이 우주를 창조하고 인간을 마지막에 창조하였다고 믿고 있습니다. 나아가 현대의 진화론에 공격을 당하고 있는 앞서가는 종교인들은 성경에 기술된 일주일 간의 창조론은 비유적인 것이라고 한발 물러서면서, 진화론도 창조의 일부라는 논리로 적당히 이를 수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이 주제에 대하여 그 이론이 명확합니다.

생명은 하나님의 일꾼인 ‘생명 운반자’(Life Carrier)가 지구상에 처음 심어서 존재하기 시작하였으며, 그 생명은 그들의 보살핌 아래 계속 진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생명 운반자란 말 그대로 생명을 우주의 근원이 있는 세상으로부터 생명이 있어야하는 행성으로 운반하는 영적인 존재를 말합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책을 읽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움으로 생략하겠습니다.

(36:0.1)

   생명은 우연히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생명은 존재의 설계자 (Architects of Being) (어떤 존재인지 아직 모름)가 작성한 계획에 따라서 만들어지며, 그리고 생명이 거주하는 행성 위에 그 지역우주의 생명 운반자가 직접 옮겨다 놓거나 아니면 어떤 작용을 한 결과로 나타난다. 이러한 생명의 운반자들은 다양한 우주의 아들 가족들 가운데 가장 흥미롭고 다채로운 존재들 중 하나이다. 그들은 피조 생명체의 생명을 고안하여 행성의 영역으로 운반하는 책임을 맡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세상에 이러한 생명을 심은 후, 그 생명의 발전을 돌보기 위하여 오랜 기간 동안 그곳에 머무르게 된다.

(36:6.1)

   생명은 기계적이면서 동시에 활력을 지닌 - 물질적이며 영적이다. 유란시아의 물리학자와 화학자들이 식물과 동물의 생명이 지닌 원형질의 형태에 대한 그들의 이해를 꾸준히 진보시킬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결코 생명을 지닌 유기체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생명은 모든 에너지가 발현하는 것과는 다른 그 무엇이다.; 물리적인 피조물 안에 들어있는 물질적인 생명조차도 그 사물 안에 본디부터 있는 것이 아니다.

(49:1.7)

   행성에서 일어나는 진화의 과정은 질서있게 이루어지며 관리아래 진행된다. 생명이 낮은 수준의 무리로부터 보다 높은 유기체로의 발전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65:4.3)

   인간의 생명이 지닌 다양한 특징은, 유한생명 존재가 보여주는 현상이 지능적으로 계획된 것이며, 그리고 유기체로서의 진화가 단순히 우주 안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많은 증거를 제시하고 있다.

(65:6.6)

   진화의 진행은 이 행성에서 여전히 활발하게 여건에 적응하여 진행 중에 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진 유기체들이 표면적으로 보기에 많은 신비한 조정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순수하게 화학적이며, 전적으로 물리적이다. 어떤 순간에도, 모든 인간의 혈관 속에는 12 개의 내분비선에서 나오는 홀몬들 사이에서 1천 5백만 가지에 이르는 화학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하고 있다.


:
위에 인용한 문장의 내용이 창조론과 진화론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주장이 구체적이고 명확하기 때문에, 추가적인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다만 생명의 운반자란 특별한 존재를 중간에 도입한 점이, 유란시아서를 알지 못하는 분에게는 이해의 걸림돌이 될 수 있겠으나, 이는 생명이 지구에서 우연히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밖으로부터 전달된 것이라는 전제를 위하여서는 필요불가결한 존재임을 이해하여야 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존재가 행성에서 생명을 일으키는 과정은 책에서 보다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며, 그 과정의 설명이 아주 흥미로웠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36:0.1 Life does not originate spontaneously. Life is constructed according to plans formulated by the (unrevealed) Architects of Being and appears on the inhabited planets either by direct importation or as a result of the operations of the Life Carriers of the local universes. These carriers of life are among the most interesting and versatile of the diverse family of universe Sons. They are intrusted with designing and carrying creature life to the planetary spheres. And after planting this life on such new worlds, they remain there for long periods to foster its development.

36:6.1 Life is both mechanistic and vitalistic—material and spiritual. Ever will Urantia physicists and chemists progress in their understanding of the protoplasmic forms of vegetable and animal life, but never will they be able to produce living organisms. Life is something different from all energy manifestations; even the material life of physical creatures is not inherent in matter.

49:1.7 The process of planetary evolution is orderly and controlled. The development of higher organisms from lower groupings of life is not accidental.

65:4.3 Many features of human life afford abundant evidence that the phenomenon of mortal existence was intelligently planned, that organic evolution is not a mere cosmic accident.

65:6.5 The process of evolution is still actively and adaptatively in progress on this planet.

But many seemingly mysterious adjustments of living organisms are purely chemical, wholly physical. At any moment of time, in the blood stream of any human being there exists the possibility of upward of 15,000,000 chemical reactions between the hormone output of a dozen ductless glands.



( 질문 4 )

   언젠가 생명의 合成, 무병장수의 시대도 가능할 것 같다.

   이처럼 과학이 끝없이 발달하면 신의 존재도 부인되는 것이 아닌가 ?


: 과학의 발전으로 생명을 인간이 만들어낼 수 있느냐 하는 문제는 창조론과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생명의 창조는 신의 영역이라는 것이 종교의 입장이며, 순수하게 진화론만 신뢰하는 사람은 인간에 의한 생명의 창조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할 것입니다.

질문 (3)의 답변에서 유란시아서는 인간이 생명을 창조할 수 없다고 명확하게 밝힌 내용을 알려드렸습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될 것이라는 점은 누구도 반론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수명의 연장은 과학의 발달과 함께 상대적이겠으나, 종교적인 관점에서는 절대적인 사망은 피할 수 없습니다.

유란시아서는 행성이 진화하여 어느 수준 단계에 이르면 그 행성에 거주하는 유한생명의 수명이 거의 5백년에 이를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49:4.6)

   생명의 수명은 행성에 따라 다르며, 원시적인 세상의 25세 정도로부터 보다 진보되고 오래된 구체는 거의 5백 살에 이른다.

: 위 글에서 언급하는 진보되고 오래된 구체란 유한생명 인간이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여 많은 인간이 죽은 후 다음 세상으로 곧 바로 갈 수 있는 단계를 의미하며, 이 시기를 유란시아서는 ‘빛 과 생명’(light and life)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유란시아가 그 단계까지 되려면 얼마나 많은 진화의 세월이 요구될지 현재로서는 짐작하기 어렵습니다.

: 수명의 연장과 사망과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답변은 “영혼”에 관한 글에서 언급될 수 있겠습니다.

: 과학의 발달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 아닌가 하는 질문은, 현재로서는 답변하기 어렵습니다. 과학의 발달이 신의 존재를 부정하여 무신론자를 증가시킬 수도 있는 반면, 과학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그 한계의 인식과 개념의 확대로 신을 더욱 인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유란시아서는 현재의 인류가 지적으로 신에 대한 이해를 과거 어느 때보다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판단 아래, 하늘 존재들이 유란시아서를 내려준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유란시아서가 믿음으로 접근하기를 요구하는 성경과는 달리, 인간의 지적인 접근으로 우주와 신을 이해할 수 있는 가르침이 될 수 있을 것인가는 이 책의 내용에 의하여 앞으로 천천히 검증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49:4.6 The length of life varies on the different planets from twenty-five years on the primitive worlds to near five hundred on the more advanced and older spheres.



( 질문 5 )

   신은 인간을 사랑했다면, 왜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주었는가 ?


: 이 질문에 대하여 가톨릭 신부는 다음과 같이 답하고 있습니다.

“고통은 주로 자유의지를 엉뚱하게 썼을 때 온다. 우리의 선택이 신의 섭리, 그 섭리의 궤도에서 벗어날 때 고통이 찾아온다. 그래서 고통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신의 섭리, 우주의 존재 원리, 그 궤도를 다시 찾으라는 신호다. 가령 불에 손을 넣으면 어떻게 되나. 뜨겁다. 고통스럽다. 그래서 재빨리 손을 뺀다. 만약 고통이 없으면 어떻게 될까. 손이 다 타고 만다. 고통과 불행과 죽음은 올바른 궤도를 찾기 위한 신호다.”

한편 한 기독교 목사는 “사랑하는 인간을 연단하기 위하여 고통과 불행과 죽음을 선사한다.”라고 말했습니다.

: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아버지와 자식의 관계‘라고 앞에서 언급하였으며, 왜 부모와 자식의 관계로 표현하였는가 하는 이유를 아주 간략하게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신과 인간의 관계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전제한다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입니다.

그러면 왜 자식인 인간에게 고통과 불행, 죽음이 있게 하였나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 질문의 해답은 위의 전제,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서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습니다. 즉 진정한 부모는 자식의 불행과 고통을 없게 하기 보다는 자식이 스스로 그 불행을 극복하여 보다 튼튼하고 훌륭하게 성장하기를 기대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입니다. 이는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역설적으로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치로 하나님도 인간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 고통과 불행을 없애도록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좀 감정에 호소하는듯하여 설득력이 약하게 느껴집니다.

근본적으로 왜 불행과 고통이 인간에게 주어지는가?

유란시아서는 우주가 탄생될 때 불완전한 위치에서,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가치적으로 불완전한 상태에서 시작하였으며, 완전을 향하여 진화하여야 하는 기본적인 법칙과 구조 때문에, 진화를 위한 과정에 마찰과 갈등과 부조화는 당연히 있게 마련이며, 이를 부딪치는 인간에게는 고통과 불행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이는 진화와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23:2.5)

   유란시아에 혼란이나 혼돈이 있다는 것이, 파라다이스 통치자들이 이곳에서의 사건을 다르게 운영할 관심이나 능력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창조자들은 유란시아를 진정한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완전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만들어지는 에덴은, 신들이 당신네들 세상에서 꼭 필요한 쇠 받침인 모루와 고난이란 망치로서 확실하게 담금질하여 만들어야 하는, 강하면서도 고귀하고, 경험으로 얻어지는 인간 성품의 발전에 아무런 공헌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불안과 슬픔, 시련과 실망은, 마치 중앙의 완벽한 우주의 세상 위에 있는 그들의 지고한 목적을 위한 모든 것들이 지니고 있는 절묘한 완전과 무한한 적응성 바로 그것과 같이, 신성한 하늘이 당신들 영역에 마련한 계획의 한 부분인 것이다.


*** 유란시아, 즉 지구 위에 혼란과 혼돈이 있는 것은, 이를 다스리는 영적 통치자들의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성품을 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란 설명입니다. 비유를 많이 인용하지 않는 유란시아서이지만, 이러한 경우를 쇠를 만드는 담금질에 비유하여, 좋은 쇠는 단단한 받침대 위에서 강한 망치질을 함으로서 만들어지듯이, 그렇게 인간을 진보시키기 위하여 고난과 혼돈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신성한 하늘의 계획 가운데 하나라는 설명입니다.

(32:5.1)

   공간을 통하여 나아가는 우주의 행군에는 위대하고 영화로운 목적이 있다. 당신네 유한생명이 벌이는 투쟁은 헛되지 않는다. 우리는 엄청난 사업, 거대한 계획을 이루는 모든 부분이며, 그러므로 광활하게 진행되는 일들은 어느 한 순간, 어느 한 생명의 기간 동안 그것을 제대로 보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우리 모두는 신들이 감독하고 완성하는 영원한 계획의 한 부분이다. 전체의 경이롭고도 우주적인 조직은 위대한 첫 근원 중심이 지닌 무한한 생각과 영원한 목적이 내는 박자에 맞추어 공간을 거쳐서 장엄하게 앞으로 나아간다.

(48:7.18)

   영적 진리는 당신이 그것을 직접 피부로 체험하기 전에는 알 수 없으며, 많은 진리는 역경 속에서가 아니라면 참으로 느낄 수 없다.

*** 우리는 주위에서 어려운 역경을 겪은 많은 사람들이 뛰어난 영적 성장을 거두고 있음을 보고 있습니다. 진정한 영적 성장은 참으로 역경 속에서 얻어집니다.

(75:8.5)

   파라다이스로 향한 당신의 모든 상승에 있어서, 완전하거나 완전을 향하거나 영원한 완전을 위한 길을 좀 쉽게 하려고, 지름길이나, 개인적으로 꾀를 내거나, 또는 다른 방법을 써서, 이미 세워져있는 신성한 하늘의 계획을 참을성 없이 피하려 한다면 결코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75:8.6)

   --- 그러나 진화를 하고 있는 우주의 일들에 있어서 이러한 헛발을 내딛는 실수가 일어나는 것은 크게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거대한 창조계의 한 부분으로서, 모든 것이 완벽하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여 이상할 게 없다.; 우리의 우주는 완벽하게 창조되지 않았다. 완벽은 우리가 가야할 영원한 목표이지, 우리는 완벽에서 시작하지 않았다.

*** 아래 문장은 고통, 불행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지만, 갈등에 대한 인간의 긍정적인 자세를 말하는 의미있는 문장이기에 인용합니다.

(100:4.1)

   종교적 생활이란 헌신적인 생활이며, 헌신적 생활이란 창조적 생활, 독창적이며 자발적인 것이다. 새로운 종교적 깨달음은, 구태적이고 열등적인 반응을 하는 낡은 사고방식 대신에, 새롭고 보다 나은 반응을 하는 새로운 생활 습관의 시작을 선택하여야하는 갈등으로부터 생겨난다. 새로운 의미는 갈등 속에서만 다만 그 모습이 밖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갈등은, 훨씬 뛰어난 의미 안에 담겨있는 더 높은 가치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하는 경우에만, 다만 지속된다.

종교가 복잡다단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정신적 갈등과 영적 동요 없이는 성장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생활에 있어서 철학적 기준을 세우기 위해서는, 마음의 철학적 영역에서 커다란 소동이 있어야 한다. 위대함과 선함, 참됨, 고귀함을 위하여 몸을 바치는 행위는 괴로운 갈등을 거치지 않고는 실행되지 않는다. 영적으로 보는 시력이 명확해지고, 우주적 깨달음이 향상되었을 때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리고 인간의 지능은, 비 영적 에너지들로 이루어진 이 일시적 세상으로부터, 어린아이가 젖을 떼듯이, 그것을 벗어날 수 있도록 인간을 보호하고 도와준다. 게으른 동물적 마음은 인간이 우주적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씨름하기 위하여 필요한 노력을 하지 못하게 방해한다.

*** 아래 인용 문장은 책의 앞 부분 내용을 읽지 않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다만 진화를 하는 창조된 세상은 근본적으로 불완전한 세상이란 문장을 강조하기 위하여 실었습니다.

(105:6.4)

   3. 유한한 실체의 확산에 대한 생명체의 반향 하보나에 있는 영원한 거주자의 서열과 그리고 일곱 대우주로부터 올라온 완벽하게 진화를 이룬 상승자들에게서 완벽한 존재가 출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진화의(시간 안에서-창조적인) 경험으로서 완전함을 얻는 것은 출발점에서 이미 완전한 것과는 다른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진화를 하는 창조계 안에서는 불완전함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그리고 이것이 잠재적인 악이 있게 된 최초의 근원인 것이다. 잘못 적응함, 부조화, 갈등, 이 모든 것이, 물리적 우주로부터 성품의 생명체에 이르기 까지, 진화를 하는 과정에 있는 성장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이다.

(154:2.5)

   우주의 난관과 행성의 장애물은, 진화하는 유한 생명체의 영혼이 성장하고 발전하기 위하여, 그리고 진보를 통한 완전을 이루기 위하여 체험하여야 하는 훈련의 한 부분으로서,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부딪치게 되어 있다. 인간 영혼이 영적으로 되기 위하여서는 우주의 광범위한 실질적인 문제들을 교육적으로 해결하는 절실한 체험이 요구된다. 동물적인 본성과 수준이 낮은 의지를 지닌 생명체는 안이한 환경 아래서는 효율적인 진보를 할 수 없다. 어려움을 유발하는 자극과 함께 많은 문제를 안겨주는 상황은, 유한생명의 진보라는 가치있는 목적의 달성에 힘차게 기여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과 영혼과 영의 활동이 일어나게 하여준다.

*** 고난과 불행이 왜 인간에게 있게 되었으며, 왜 있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유를 유란시아서 나름대로 설명하였습니다. 이러한 설명 이외에 더 나은 이유를 제시하기 어렵습니다. 여러 가지 정황상 이 이유를 수긍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이 그 이유를 알고 난 후, 고난과 불행에 대한 자세가 달라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23:2.5 The confusion and turmoil of Urantia do not signify that the Paradise Rulers lack either interest or ability to manage affairs differently. The Creators are possessed of full power to make Urantia a veritable paradise, but such an Eden would not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those strong, noble, and experienced characters which the Gods are so surely forging out on your world between the anvils of necessity and the hammers of anguish. Your anxieties and sorrows, your trials and disappointments, are just as much a part of the divine plan on your sphere as are the exquisite perfection and infinite adaptation of all things to their supreme purpose on the worlds of the central and perfect universe.

32:5.1 There is a great and glorious purpose in the march of the universes through space. All of your mortal struggling is not in vain. We are all part of an immense plan, a gigantic enterprise, and it is the vastness of the undertaking that renders it impossible to see very much of it at any one time and during any one life. We are all a part of an eternal project which the Gods are supervising and outworking. The whole marvelous and universal mechanism moves on majestically through space to the music of the meter of the infinite thought and the eternal purpose of the First Great Source and Center.

48:7.18 You cannot perceive spiritual truth until you feelingly experience it, and many truths are not really felt except in adversity.

75:8.5 Never, in all your ascent to Paradise, will you gain anything by impatiently attempting to circumvent the established and divine plan by short cuts, personal inventions, or other devices for improving on the way of perfection, to perfection, and for eternal perfection.

75:8.6 All in all, there probably never was a more disheartening miscarriage of wisdom on any planet in all Nebadon. But it is not surprising that these missteps occur in the affairs of the evolutionary universes. We are a part of a gigantic creation, and it is not strange that everything does not work in perfection; our universe was not created in perfection. Perfection is our eternal goal, not our origin.

100:4.1 Religious living is devoted living, and devoted living is creative living, original and spontaneous. New religious insights arise out of conflicts which initiate the choosing of new and better reaction habits in the place of older and inferior reaction patterns. New meanings only emerge amid conflict; and conflict persists only in the face of refusal to espouse the higher values connoted in superior meanings.

100:4.2 Religious perplexities are inevitable; there can be no growth without psychic conflict and spiritual agitation. The organization of a philosophic standard of living entails considerable commotion in the philosophic realms of the mind. Loyalties are not exercised in behalf of the great, the good, the true, and the noble without a struggle. Effort is attendant upon clarification of spiritual vision and enhancement of cosmic insight. And the human intellect protests against being weaned from subsisting upon the nonspiritual energies of temporal existence. The slothful animal mind rebels at the effort required to wrestle with cosmic problem solving.

105:6.4 The creature repercussion to finite-reality promulgation resulted in the appearance of perfect beings on the order of the eternal inhabitants of Havona and of perfected evolutionary ascenders from the seven superuniverses. But to attain perfection as an evolutionary (time-creative) experience implies something other-than-perfection as a point of departure. Thus arises imperfection in the evolutionary creations. And this is the origin of potential evil. Misadaptation, disharmony, and conflict, all these things are inherent in evolutionary growth, from physical universes to personal creatures.

154:2.5 Universe difficulties must be met and planetary obstacles must be encountered as a part of the experience training provided for the growth and development, the progressive perfection, of the evolving souls of mortal creatures. The spiritualization of the human soul requires intimate experience with the educational solving of a wide range of real universe problems. The animal nature and the lower forms of will creatures do not progress favorably in environmental ease. Problematic situations, coupled with exertion stimuli, conspire to produce those activities of mind, soul, and spirit which contribute mightily to the achievement of worthy goals of mortal progression and to the attainment of higher levels of spirit destiny.



( 질문 6 )

   신은 왜 惡人을 만들었는가 ?

       예 : 히틀러나 스탈린, 또는 갖가지 흉악범들.



: 왜 악인이 있느냐 하는 문제는, 왜 악이 존재하느냐 하는 질문입니다. 결과적으로 악의 본질이 무엇이야 하는 의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절대적인 능력을 지닌 하나님이 왜 세상에 악이 있도록 허용하였냐는 질문입니다. 악이 무엇인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악의 본질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대답하기 어렵습니다.

악은 사실상 인간의 개념에 따른 것으로서 시대와 장소에 따라 그 기준이 다릅니다. 백년 전에는 악이었던 게 지금은 악이 아닐 수 있으며, 한 나라에서 선인 것이 다른 곳에서는 악이 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악은 도덕과의 개념과도 그 한계가 명확하지 않습니다. 도덕적으로 어긋나는 것이 악이라고 규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인간은 악의 반대편에 선을 두고, 신을 절대적 선(善)의 존재로 규정합니다. 사실 신이 그러한 존재인지 아닌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그러한 존재로 전제를 하지 않는다면, 인간 사회에 선이 있든 악이 있든 신과 연결지어서 상관할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을 선의 존재로 생각할까요 ? 이에 대한 해답은 쉽지 않습니다.

쉽게 추정할 수 있는 바탕은, 인간은 선을 추구하는 본성을 자기도 모르게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적으로 지니고 있으며, 이를 의식이 있는 한 거의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으로 여겨집니다.

한편 신은 어쩌면 선악과 근본적으로 연관이 없으며, 다만 인간이 세상의 정신적, 개념적 현상을 선과 악의 잣대로 재고 있기 때문인지 모릅니다. 왜냐면 온 우주는 신의 영역인데, 우리가 아는 한 물리적 영역과 동물적 세상에는 선과 악이 없습니다. 오직 가치를 판단하는 지적 생명체의 영역에서만 선과 악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이는 가치 판단의 잣대에서, 어느 선을 넘어서면 선에 가깝고 그 선에 미흡하면 악의 영역이 될 수도 있습니다. 우주의 긴 과정에서 보면, 지적 생명체가 진화하는 과정에 악은 일시적으로 보이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선과 악의 문제는 세상의 질서, 특히 가치관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판단하는 문제로서, 종교를 규정하는 가장 기본이 되는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이 주제에 대하여, 제가 아는 범위로서는 기존 종교가 이를 일관성 있게 조리 있게 설명하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다만 하나님이 인간에게 내려준 자유의지 때문에 생기는 결과라고만 어정쩡하게 말하면서, 하나님이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자유의지를 주었는데 그 사랑을 잘못 사용하여 악인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이 선과 악, 죄와 실수에 관하여 많은 방법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몇 가지를 인용하면 아래와 같으며, 이러한 글을 통하여 어느 정도 선악에 대한 가치 판단을 위한 지식과 이해를 얻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이 선과 악의 문제는, 마치 인간에게 있어서 인류의 문명이 어느 수준에 이르러야 생활의 기본 규범이 되는 도덕에 대한 기준을 가질 수 있듯이, 인류의 영적 수준이 어느 정도 성장하여야만 선악에 대한 판단도 가능할 것으로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 유란시아서를 좋아하며,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유 중 한 가지가 이 “죄” 와 “악”에 대한 정의입니다. 이렇게 악을 명확하게 규명한 개념을 아직 다른 곳에서 접하지 못하였으며, 따라서 유란시아서가 내리는 악의 개념이 가장 타당하고 현실적인 것으로 판단되어, 이 한 가지만으로도 유란시아서를 연구할만한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2:6.8)

   하나님은 죄인은 사랑하나, 죄는 미워한다.; 이러한 말은 철학적으로는 맞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초월의 위치에 있는 성품이며, 그리고 개별 성품존재들이 다른 성품존재를 다만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다. 죄는 성품이 아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성품을 지닌 실체(영원할 수 있는 잠재성을 가진)이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며, 그렇지만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는 아무런 성품적인 태도로서 상대를 하지 않는데, 왜냐면 죄는 영적인 실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성품적이지 않은 것이다. 그러므로 정의의 하나님은 그 존재만 단지 인지할 뿐이다. 사랑의 하나님은 죄인을 구원하신다.; 하나님의 법은 죄를 파괴한다. 이러한 신성한 본성의 자세는, 유한생명 마음이 그와 함께 살아가는 영 조율자를 그와 함께하는 존재로 완전히 인식하는 것처럼, 만약 죄인이 죄를 자기 자신과 완전히 하나라고 끝까지 인식한다면, 그 유한생명에 대한 태도를 틀림없이 바꿀 것이다. 죄와 하나가 된 그러한 유한생명은 그 때는 본성에 있어서 완전히 영이 아닌 것으로 될 것이며(따라서 성품적으로 실체가 아니며), 그리고 끝내 존재의 소멸을 겪게 될 것이다. 비 실체는, 심지어 생명체의 본성이 완전을 이루지 못한 것까지도, 점진적으로 실체가 되고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우주 안에서는 영원히 존재할 수가 없다.


*** 위 글의 내용은 책의 전반부에 나오는 글로서, 우주의 원본적인 질서에 대한 서술이기에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용어 “성품”(personality)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인용하는 성품은 앞의 글에서 잠깐 언급한 것처럼, 우주의 근본적인 구성요소의 하나로서, 모든 지적 생명체의 바탕이 되고 우주의 가장 높은 차원이 되는 이것이 진정한 우주의 실체(reality)라고 말합니다.

위 글에서 죄는 그러한 우주의 진정한 실체인 성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품의 근원적인 존재로서, 진화 단계의 성품을 초월한 존재 -transcendent personality 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죄와 근원적으로 연결이 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우주 안에서 영적으로 성장하여야 하는 인간은 성품을 지닌 존재, 즉 성품존재로서, 죄는 그 존재에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에 불과하지만, 이에 집착하고 고수한다면 비 실체인 죄가 실체인 성품존재를 허망에 빠지게 하여 끝내는 우주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54:0.2)

   신들(Gods)은 악을 창조하지 않았으며 죄나 반란을 허용하지도 않았다. 악이 발생할 가능성은 의미와 가치에 있어서 서로 다른 여러 수준에서 완벽함을 지니고 있는 우주 안에서 시간과 함께 존재한다. 불완전한 존재가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할 능력을 지니고 있는 모든 영역 안에서는 죄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진리와 비진리, 사실과 거짓이 충돌하면 잘못이 일어날 가능성을 제공한다. 의도적으로 악을 선택하면 죄가 된다.; 진리를 의식적으로 거절하면 잘못이다.; 죄나 잘못을 끈질기게 추구하면 죄악이 된다.


***
위 문장 첫 용어 “들(Gods)" 에서 의미하는 신은 가장 으뜸의 창조주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파라다이스로부터 파생되어 창조된 여러 지역우주를 관리하는 창조자들을 일컫는 용어로서, 이들도 창조의 능력을 지녔으므로 “신” God 으로 지칭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우주의 창조는 하나님에 의하여 직접 창조되었다기보다는, 이들 개개의 단위별 우주마다 창조자가 있어서 이들에 의하여 실제 창조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또한 이 문장에서 말하는 “반란“이란 인간 사회에서의 일어나는 반란을 의미하지 않으며, 오래 전 우주에서 일어났던 루시퍼 일당의 반란을 말합니다.

(56:10.14)

   모든 전자(electron), 생각, 또는 영이 일으키는 모든 충동(impulse)은 전 우주 안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활동 단위이다. 오직 죄만이 정신적이고 영적인 단계에서 저항을 하는 고립된 악한 인력(gravity)이다. 우주는 하나의 전체이다.; 어떤 사물이나 존재도 고립되어 존재하거나 살 수 없다. 자아의 실현을 만약 반사회적으로 이룬다면 이는 악이 될 가능성이 있다. “어느 누구도 홀로 살 수 없다.”라는 말은 전적으로 옳다. 우주적으로 서로 어울림은 성품존재가 통일하는 형태 가운데 가장 높은 형태를 이루게 한다. 지저스는 “너희들 가운데 가장 크게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라.”라고 말씀하셨다.

*** 우주의 모든 성품존재는 서로 어울려서 협력하면서 존재하게 되어 있으며, 이에 역행하여 홀로 고립하는 존재는 악이 될 가능성을 가진다고 말합니다.

(67:1.4)

   죄를 보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우주의 철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죄란

실체에 대하여 알면서도 저항하는 성품존재가 가지는 태도이다. 실수란 실체를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악이란 우주의 실체를 부분적으로 실현하거나, 또는 이에 대하여 잘못 적응하는 것이다. 그러나 죄는 신성한 실체에 대하여 의도적으로 저항하는 것 -영적인 진보를 반대하기 위한 의식적인 선택-이며, 반면 사악함이란 이미 인정된 실체에 대하여 공공연히 저항하는 반항이며, 그리고 우주적인 정신병자 미치광이에 가까운, 성품의 붕괴가 일어난 그러한 정도를 의미한다.

실수는 지적인 예민함이 부족한 것을 말한다.; 악은 지혜의 결핍을 말한다.; 죄는 지극히 영적으로 빈곤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사악함은 성품을 통제하는 능력이 사라짐을 가르킨다.

그리고 죄를 여러 번 선택하고 자주 반복한다면, 습관이 될 수 있다. 습관적인 죄인은 쉽게 사악하게 되어, 우주에 대하여 그리고 우주의 신성한 모든 실체에 대한 적극적인 반대자가 될 수 있다. 모든 죄는 용서될 수도 있겠지만, 사악에 단단히 물든 자는 결코 그가 저지른 잘못에 대하여 진정으로 비탄해하거나 또는 그의 죄를 용서하여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111:4.11)

   문제란 이것이다.: 만약 자유의지의 인간이 내부의 인간 안에 창조의 능력이 주어진다면, 그러면 이 자유의지의 창조성은 자유의지로 파괴를 할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을 또한 품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반드시 인식하여야만 한다. 그리고 창조성이 파괴성으로 바뀔 때는, 억압, 전쟁, 파괴 - 즉 악과 죄의 황폐함을 당신은 직면하여야 한다. 악은 창조가 한쪽으로 지나치게 치우친 것으로서, 이는 분열과 아울러 결과적으로 파괴로 향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모든 충돌, 갈등은 악이며 충돌 안에서 악이 내면생활의 창조적인 활동을 방해한다. - 그것은 성품존재 안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내란이다.

(111:6.3)

   죄의 문제는 유한한 세상 안에서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유한하다는 사실이 악도 아니며 죄가 되는 것도 아니다. 유한한 세상은 무한한 창조주에 의하여 만들어 진다. -그의 신성한 아들이 손수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선하여야만 한다. 악과 죄의 근원을 제공하는 것은 유한함을 잘못 사용하고, 왜곡하고, 남용하는 데 있다.


*** 아래의 글은, 제자가 “무엇이 악입니까?”라고 물은 질문에 대한
지저스의 답변입니다. 죄와 악에 대하여 가장 적절하게 설명한 내용입니다.

(148:4.6)

   “본성적으로, 영으로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유한생명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는 악의 성향에 어쩔 수 없지만, 그러한 자연적인 태도의 불완전성은 죄도 아니고 사악한 것도 아니다. 유한생명 인간이란 파라다이스에 있는 아버지의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는 그의 길고도 긴 상승의 시작일 뿐이다. 자연적으로 지니고 있는 불완전과 부족함은 죄스런 것이 아니다. 인간은 진정 죄에 어쩔 수 없지만, 죄의 길과 사악한 생애를 알면서 고의적으로 선택하지 않는 한, 어떤 의미에서도 악의 자식이 아니다. 악은 이 세상의 자연적인 질서 안에 본래부터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죄는 영의 빛으로부터 짙은 어둠으로 떨어진 자들이 이 세상으로 가져다 준, 의식적으로 배반을 하는 태도이다.


*** 죄와 악에 대하여 유란시아서가 설명하는 내용은 쉬운듯 하면서도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쉽지 않음은 그 만큼 이 주제가 우리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어려운 주제임을 암시하기도 합니다.

저가 유란시아서에서 알게 된 주제에 대한 이해는, 죄는 우주의 실체인 성품의 진화를 역행하는 행위로서, 그 행위가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 의도적으로, 적극적으로 행하는 것이 악이 되며, 그 행위가 습관이 되어 돌이킬 수 없을 때 사악함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질문자가 질문의 내용에서, 악의 대표적인 존재로서 히틀러와 스탈린을 예로 들었습니다. 이들의 경우도 그들이 인간의 기본적인 자유와 선택과 인권을 유린하여 많은 인간의 진화를 방해하였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한 행위를 의도적으로 고의적으로, 이를 끈질기게 추진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사악한 존재로 판단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편 이 시대에 그들의 명령에 따라 총칼을 휘두른 일반 사병들은 악한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이 경우, 자기의 의사가 아니라, 다만 생존하기 위하여 명령에 따라 잘못을 저지른 경우는 그 잘못을 깨닫는 것과 동시에 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에 동조하여 그들의 행동이 악인 줄 알면서도 악행을 즐긴 하수인들도 또한 악의 존재로 판단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판단은 누구의 판결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개인의 영적 상태가 그러한 행위에 의한 피해와 결함으로 인하여 다시 영적 성장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로 복구가 가능한 정도인가 아닌가에 달렸을 것입니다.

이러한 중요한 주제를 다룰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지 못하면서 감히 의견을 제시한 점을 이해바라며, 다만 함께 공부하고자 하는 노력의 발로임을 양해 바랍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2:6.8 God loves the sinner and hates the sin: such a statement is true philosophically, but God is a transcendent personality, and persons can only love and hate other persons. Sin is not a person. God loves the sinner because he is a personality reality (potentially eternal), while towards sin God strikes no personal attitude, for sin is not a spiritual reality; it is not personal; therefore does only the justice of God take cognizance of its existence. The love of God saves the sinner; the law of God destroys the sin. This attitude of the divine nature would apparently change if the sinner finally identified himself wholly with sin just as the same mortal mind may also fully identify itself with the indwelling spirit Adjuster. Such a sin-identified mortal would then become wholly unspiritual in nature (and therefore personally unreal) and would experience eventual extinction of being. Unreality, even incompleteness of creature nature, cannot exist forever in a progressingly real and increasingly spiritual universe.

54:0.2 The Gods neither create evil nor permit sin and rebellion. Potential evil is time-existent in a universe embracing differential levels of perfection meanings and values. Sin is potential in all realms where imperfect beings are endowed with the ability to choose between good and evil. The very conflicting presence of truth and untruth, fact and falsehood, constitutes the potentiality of error. The deliberate choice of evil constitutes sin; the willful rejection of truth is error; the persistent pursuit of sin and error is iniquity.

56:10.14 Every impulse of every electron, thought, or spirit is an acting unit in the whole universe. Only sin is isolated and evil gravity resisting on the mental and spiritual levels. The universe is a whole; no thing or being exists or lives in isolation. Self-realization is potentially evil if it is antisocial. It is literally true: " No man lives by himself. " Cosmic socialization constitutes the highest form of personality unification. Said Jesus: " He who would be greatest among you, let him become server of all.

67:1.4 There are many ways of looking at sin, but from the universe philosophic viewpoint sin is the attitude of a personality who is knowingly resisting cosmic reality. Error might be regarded as a misconception or distortion of reality. Evil is a partial realization of, or maladjustment to, universe realities. But sin is a purposeful resistance to divine reality - a conscious choosing to oppose spiritual progress - while iniquity consists in an open and persistent defiance of recognized reality and signifies such a degree of personality disintegration as to border on cosmic insanity.

111:4.11 This is the problem: If freewill man is endowed with the powers of creativity in the inner man, then must we recognize that freewill creativity embraces the potential of freewill destructivity. And when creativity is turned to destructivity, you are face to face with the devastation of evil and sin—oppression, war, and destruction. Evil is a partiality of creativity which tends toward disintegration and eventual destruction. All conflict is evil in that it inhibits the creative function of the inner life—it is a species of civil war in the personality.

111:6.3 The problem of sin is not self-existent in the finite world. The fact of finiteness is not evil or sinful. The finite world was made by an infinite Creator--it is the handiwork of his divine Sons--and therefore it must be good. It is the misuse, distortion, and perversion of the finite that gives origin to evil and sin.

148:4.6 "By nature, before the rebirth of the spirit, mortal man is subject to inherent evil tendencies, but such natural imperfections of behavior are neither sin nor iniquity. Mortal man is just beginning his long ascent to the perfection of the Father in Paradise. To be imperfect or partial in natural endowment is not sinful. Man is indeed subject to evil, but he is in no sense the child of the evil one unless he has knowingly and deliberately chosen the paths of sin and the life of iniquity. Evil is inherent in the natural order of this world, but sin is an attitude of conscious rebellion which was brought to this world by those who fell from spiritual light into gross darkness.



( 질문 7 )

   예수는 우리의 罪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죽었다는데,

   우리의 罪란 무엇인가 ?

   왜 우리로 하여금 罪를 짓게 내버려 두었는가 ?


: 위 질문에서 말하는 “우리의 죄”란 일반 기독교에서 언급하는 두 가지 죄, 즉 아담-이브의 원죄(原罪)와 이에 덧붙여 인간이 살아가면서 짓는 여러 가지 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죄와 악에 대하여서는 앞의 글 질문 (6)번의 답변에서 자세히 설명하였습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아도 될 줄 압니다.

다만 아담 이브의 원죄에 대하여 생각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원죄란 기독교에서 주장하는 이론으로서, 성경의 창세기에 의하면, 태초에 최초의 인간인 아담 이브가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금한 선악과를 따먹음으로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기는 죄를 지어 타락하였으며, 이 죄가 자손에게로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저는 성경에 기술된 이러한 내용은, 마치 우리나라에서 전래하는 우리 민족 조상이 탄생하는 과정을 이야기한 곰과 호랑이의 신화처럼, 유대민족이 전해내려오는 신화의 한 부분이 성경에 유입되었을 것이며, 이것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이야기로서 이해하고 있습니다. 유대 민족 창조의 설화와, 인간이 자기의 잘못을 남의 탓으로 돌리는 좋지 않은 심성이 서로 결합하여 이러한 원죄설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합니다.

유란시아서는 인간은 이 지구상에 약 1백만년 전에 시작되었으며, 약 4만년 전에 아담과 이브가 인류의 생물학적 발전을 위하여 이 땅에 내려와서 살았던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인간보다 뛰어난 존재로서 인류의 혈통을 개선하여 진화시킬 목적이었으나, 그 목적을 원만히 달성하지 못했던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인류의 조상도 아니고, 그들의 실수로 인하여 인간에게 죄가 생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란시아서를 기준으로 한다면, 원죄란 없는 것이며, 예수와 원죄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인간의 죄와 관련하여, 기독교의 중심 사상 중 하나인 예수의 대속 사상입니다.

대속이란 누구를 대신하여 희생을 한다는 의미로서, 예수의 십자가 보혈로 인간은 예수를 믿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이론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는 처음 기독교의 이러한 대속 사상을 접하였을 때 잘 납득이 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기독교에 대하여 긍정적이지 못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이러한 대속 사상이 생겨난 근거는, 사도 바울(Paul)이 그의 서신에서 “지저스의 죽음을 구원의 의미”로 이야기 한 것이 대속 개념으로 발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서신의 표현이 기독교의 발전 과정에서 확대 해석되어 아전인수식으로 편리하게 해석한 것이 굳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렇게 바울이 본래 설파한 의미보다 확대 해석하게 된 바탕은, 첫째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인간이 자연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하여 시작된 제사와 희생물 제공의 미신이 기독교와 접목하여 발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동물을 제사 지내던 관습이 예수의 죽음과 연결되어서, 그가 인류의 죄를 대신 갚는 희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된 점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로마 시대에 카톨릭이 번성하면서,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력과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예수의 죽음을 기리는 의식을 만들어 내게 되었으며, 성직자들은 그러한 제사의 제사장이 됨으로서 왕권까지도 장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과정에 의식을 신성시하게 하기 위하여, 죄 사함을 받는 의식의 과정을 도입하였으며, 이와 연관시켜서 포도주와 밀떡을 바치면서 마지막 만찬 때 거행된 식사를 예수의 피와 살로 상징하여 대입시킨 후 이를 연결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식 절차를 통하여 죄의 사함을 확인시키면서 대속 사상이 확립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해석은 카톨릭 교인들에게 대단히 불경스럽게 받아들여지겠으나, 교리에 대한 한 가지 가능한 해석인 만큼 이해를 바랍니다.

유란시아서는 이러한 기독교의 잘못된 교리, 즉 원죄의 사상과 예수의 대속(代贖)사상을 인정하지 않고 있으며, 이에 대한 참다운 내용을 밝히고 있습니다.

아담 이브의 행적은 책 74 편 과 75 편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며, 그 내용이 대단히 많음으로 여기에 언급하기는 어렵습니다.

다만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한 의미와 관련된 글을 아래에 몇 가지 참고로 싣습니다. 간단한 문장이지만 예수의 정신을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 글에서 예수의 이름 표기를 지저스로 바꿔 사용하겠으며, 그 이유는 기독교가 말하는 예수의 시대는 이제 지나고, 유란시아서가 가르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하기를 희망하는 바람에서, 유란시아서가 사용된 영어의 발음을 좆아서 지저스로 바꾸어 사용하고자 합니다.

(186:5.7)

   지저스는 죄에 대한 희생으로 사망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인류가 타고난 도덕적 죄를 속죄하려 하지 않았다. 인류는 하나님 앞에 그러한 혈통적인 죄를 가지고 있지 않는다. 죄란 순수하게 개인이 죄를 짓는 것으로서, 아버지의 뜻과 그의 아들의 다스림에 대항하여,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반란을 하는 문제이다.

(188:5.2)

   십자가는 죄인을 향한 지저스의 태도가 죄를 비난하거나 묵과하기 보다는 오히려 영원한 사랑의 구원임을 언제까지나 나타내 보여준다. 그의 삶과 죽음이 인간을 선과 올바름으로 향하도록 설득한다는 의미에서 진실로 그는 구원자이다. 지저스는 인간을 너무나 사랑함으로 그의 사랑이 사람의 가슴 안에서 사랑의 반응이 일어나도록 일깨워 준다.

(188:5.3)

   지저스는,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과 능력으로, 죄와 악의 굴레를 부서뜨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인간이 더 나은 삶을 선택할 수 있도록 자유롭게 하였다. 지저스는 과거로부터의 구원을 보여주었으며, 그 구원 안에 미래를 위한 승리가 약속되었다. 용서는 그리하여 구원을 열어주었다. 신성한 사랑의 아름다움은, 한번 인간의 가슴 속으로 완전히 받아들여지면, 죄의 매력과 악의 능력을 영원히 부셔버린다.


*** 위 글은 그 의미가 깊으므로 몇 차례 읽어도 그 깊은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읽으면 읽을수록 그 정신이 깊이 느껴집니다.

지저스가 십자가에 처형된 이유는, 그가 인간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기존 종교인들과 정치세력들이 인류를 영적으로 향상시키고 구원하려는 지저스의 새로운 가르침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여, 자기들의 위치와 욕심을 지키기 위한 모함에 의하여 일어난 하나의 시대적 사건이었습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믿는 것처럼 지저스가 십자가에 처형됨으로서 인류를 구하는 대속의 바탕이 마련되었다면, 그 사건으로 목적이 달성되었음을 축하하고 지저스의 죽음을 기뻐하여야 할 것이며, 그를 배반하고 모함하고 처형한 사람들을 표창하여야 하는 모순에 빠지게 됩니다.

인간의 편협된 심성과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빚은 우주적인 비극을 인간의 죄 사함과 연결하는 것은, 그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된다면 인간에 대한 깊은 실망과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한편 지저스는 인간이 자기에게 십자가의 처형이란 잘못을 저질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용서하고 오히려 사랑함으로서, 인간이 지고한 선으로 향하여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습니다.

그는 목숨을 바치는 고난을 통하여 그의 지고한 사랑을 나타내 보임으로서, 인간의 정신이 크게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인류의 진정한 구원자인 것입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186:5.7 Jesus is not about to die as a sacrifice for sin. He is not going to atone for the inborn moral guilt of the human race. Mankind has no such racial guilt before God. Guilt is purely a matter of personal sin and knowing, deliberate rebellion against the will of the Father and the administration of his Sons.

188:5.2 The cross forever shows that the attitude of Jesus toward sinners was neither condemnation nor condonation, but rather eternal and loving salvation. Jesus is truly a savior in the sense that his life and death do win men over to goodness and righteous survival. Jesus loves men so much that his love awakens the response of love in the human heart.

188:5.3 Jesus, by the power of his personal love for men, could break the hold of sin and evil. He thereby set men free to choose better ways of living. Jesus portrayed a deliverance from the past which in itself promised a triumph for the future. Forgiveness thus provided salvation. The beauty of divine love, once fully admitted to the human heart, forever destroys the charm of sin and the power of evil. ~ The Urantia Book,



( 질문 8 )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나 ?


: 성경의 근원과 역사에 관한 정보는 대체적으로 자세히 알려져 있습니다.

성경(聖經) 또는 성서(聖書), Bible 이란 용어는 그리스어 biblia "책“이란 말에 어원을 두고 있으며,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구약(The Old Testament)은 대부분이 히브리(Hebrew) 언어로 적혀있던 유대민족의 역사입니다. 기원 1000-1500년 전부터 기원후 1세기까지 여러 사람이 기록한 66권이 유대민족에게 전해져 왔으며, 이를 AD 90년 경 현재의 39권으로 정리하였습니다.

구약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서, 첫째 Torah(가르침, 법)는 이스라엘 민족 국가의 근원과 그들의 법, 이스라엘 민족의 신-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그에 따른 변천, 둘째는 Nevim(예언)으로 유대민족과 다른 민족, 유대 신앙인과 비신앙인 등 이스라엘 민족 투쟁의 역사, 셋째 Ketuvim(저서)은 시편, 욥기 등 문학적 철학적 작품을 담고 있습니다.

이 구약의 특징은, 다른 민족의 초기 역사와는 달리, 유대민족이 믿는 유일신과 유대민족과의 관계가 일관되게 기록된 점입니다.

신약(The New Testament)은 초기에 히브리 언어와 그리스 언어로 기록되어 있던 여러 기록들을, AD 382년 교황 Damasus I 세의 지시로 라틴(Latin)어로 번역되었으며, 이 번역을 근거로 AD 395년 현재의 27편을 확정지었습니다. 이 27편에 포함되지 못한 기록들은 외경(外經) Apocrypha 이란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신약의 내용은 Gospels(복음서), Act of Apostles(사도의 행전), Epistles(서신), Book of Revelation(예언서)로 구분할 수 있으며, 주로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여러 사람의 기억과 입으로 전해오던 것을 기록하면서, 그리고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기록된 것을 라틴어로, 다시 라틴어의 번역을 다른 여러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판본이 생겨나게 되었으며, 아울러 로마 카톨릭과 에티오피아 정교, 영국 성공회와 개신교가 번역하면서 책에 실을 내용의 선택에 있어서 서로 판단을 달리함에 따라 오늘날 많은 종류의 성경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이들 중 1546년 정통성을 인정받은 Latin Vulgate Bible이 영어로 번역된 King James 본 Gutenberg 본 등이 가장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어 번역본도 카톨릭과 개신교, 개신교 내에서도 종파에 따라 서로 의견이 달라 여러 가지 번역본들이 난무하다가 공동번역본을 만들려고 추구하였으나, 통일을 보지 못하고 각각 조금씩 다른 번역서를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위와 같이 성경의 근원과 역사를 자세히 언급하는 이유는 성경의 내용이 완전하며, 오류가 없다는 주장과 연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그 내용은 하나님이 내려주었기 때문에, 즉 성령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근거로 기독교인들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성경 구절이 디모데 후서 3:16입니다.

영어 원문은 “All scripture is given by inspiration of God and profitable for teaching, for reproof, for correction, and for training in righteousness. " 으로서, 이를 대한성서공회 카톨릭(1986년 판)은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데 유익한 책입니다.“이며, 개신교 번역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로 되어 있습니다.

즉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나 감동으로 된 것이라고 하였으며, 이 말이 성경은 아무런 오류가 없는 책이라고 주장하는 근거입니다.

위 문장을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서 썼다”라는 의미까지 이해하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그렇다고 하여 아무런 오류가 없는 책이라고 확대해석하기엔 좀 근거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성경에 대한 유란시아서의 견해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구약은 :

(97:7.3)

   이들 히브리 사제와 서기들은 그들 마음속에 오직 한 가지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유대민족 국가를 회복하고, 그들의 전통을 빛내며, 종족의 역사를 높이는 것이었다. 만약 이들 사제들이 서방 세상에 그렇게 널리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고착시킨 사실에 대하여 억울하게 생각한다면, 의도적으로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그들이 영감을 받아서 썼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그들은 성스런 책을 쓸 수 있는 전문가도 키우지 않았다. 그들은 단순히 포로로 잡혀 있는 그들의 동료들이 지닌 점점 줄어드는 용기를 북돋아주기 위한 생각으로 단순히 교제를 마련하려 하였다. 그들은 민족의 정신과 동족의 사기를 올리려는 목적만 오로지 생각하였다. 후세 사람들이 이렇게 남아있는 것과 다른 기록들을 모아서 오류라고는 없을 것으로 추정하는 가르침의 지도서가 있게 되었다.

(159:4.3)

   ( 제자 나다니엘이 성서에 대하여 묻는 질문에 대하여 지저스가 답변하기를 )

“이러한 기록들은 일부는 성스런 사람들이, 또 다른 것들은 그렇게 성스럽지 않은 사람들이 쓴, 인간의 작품이다. 이들 책에 있는 가르침은 그것들이 만들어진 시점에 깨달은 정도만큼의 견해를 반영하고 있다. 진리의 계시로서 본다면, 처음 것보다 뒤에 것이 훨씬 믿을 만하다. 성서는 결점이 있으며 인간이 모두 만들었지만, 그러나 지금 이 시대에 모든 세상에서 찾을 수 있는 종교적 지혜와 영적 진리가 최선으로 집합된 것임을 잊지 말아라.”

159:4.4

   “이들 중 많은 책들이 책에 적힌 사람에 의하여 쓰이어지지 않았지만, 그러나 그렇더라도 그 안에 담긴 진리의 가치는 조금도 손상되지 않았다.” -----

“성서는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에 신성한 것이며, 그리고 그들은 이들 글에서 올바름과 진리, 신성에 대하여 그들이 지녔던 최고의 개념을 기록하여 남겼다. 성서는 많은 진실을, 대단히 많은 사실을 담고 있지만, 지금 너희들에게 전하는 가르침으로 본다면, 이들 기록들이 내가 모든 세상에 밝히고자 하는 사랑을 베푸는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잘못 나타내고 있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너희들은 알아야 한다.”


*** 그러므로 구약의 기록들은 유대 민족의 역사에 있어서, 그 시대에 뛰어난 인간들이 쓴 작품이란 설명입니다. 그 내용은 뛰어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이 기술한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신약에 대하여 유란시아서가 지적한 내용을 보면 :

(97:8.6)

   신약의 저자들과 후기 기독교 작가들은 유대 선지자들을 뛰어 넘으려는 좋은 의미의 의도로 히브리의 역사를 왜곡시켜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그리하여 히브리의 역사는 유대인 작가와 기독교 작가들 모두에 의하여 처참하게 활용되었다. 현세의 히브리 역사는 철저하게 교리화되었다. 허구로 꾸며진 신성한 역사로 바뀌었으며 이른바 기독교 국가들의 도덕 개념 그리고 종교적 가르침과 떼려야 뗄 수 없이 서로 묶이게 되었다.

(121:0.1)

   앤드류는 그의 스승(*지저스)이 그의 사후에 글로 쓰이어진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고 얼마나 면밀하게 애썼는가를 알기 때문에, 그가 썼던 이야기를 몇 부 다시 만들기를 완강히 거절하였다. 지저스의 다른 사도들도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되어 복음서가 기록되는 것이 크게 지연되었다.

(121;8.11)

   이들 저자들(*사도들) 모두는 그들이 보고, 기억하고, 또는 그에게서 배운 그대로, 그리고 이렇게 오래전에 있었던 사건에 대한 그들의 생각이 바울의 기독교 이론을 그들이 결과적으로 지지함으로서 영향을 받은 그대로, 지저스의 솔직한 모습을 그려서 전달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기록들은, 완전하지 않은 채로, 거의 2천년 동안 유란시아의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키기에 충분하였다.

(196:2.1)

   사도 바울은 나중에 이 새로운 복음을, 그 자신의 이론적 관점을 구체화 시키고 다마스커스의 길에서 지저스와 함께한 개인적인 체험을 반영한 종교인, 기독교로 모양을 바꾸었다. 하늘 왕국에 대한 복음은 갈릴리 지저스가 개인적으로 겪은 종교적 체험에 바탕을 두고 있다.; 기독교는 사도 바울이 개인적으로 겪은 종교적 체험에 거의 전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다. 신약의 거의 대부분은 의미 깊으며 영감에 넘치는 지저스의 종교적 생애를 묘사한 것이 아니라, 바울의 종교적 체험에 대한 이야기와 그의 개인적인 종교적 확신을 묘사하기 위하여 바쳐졌다. 이 기록에서 오직 예외적으로 괄목할 만한 것은, 마태(Matthew), 마가(Mark), 누가(Luke)의 일정 부분을 제외하고, 히브리 서와 야고보(James) 서한뿐이다. 베드로(Peter)마저도, 그의 기록에서, 단 한 번만 그의 스승의 개인적 종교의 생애를 다루었다. 신약은 기독교 문헌으로서는 뛰어나지만, 지저스의 사상(Jesusonian)으로서는 오로지 빈약할 뿐이다.


*** 유란시아서에서
지저스에 관하여 밝히는 한 가지는, 지저스가 그 자신에 대하여 스스로 기록을 남기는 것은 철저히 피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알고 있는 제자들도 기록을 남기는 것을 자제하였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바울이 적극적으로 기록을 남겼으나, 지저스에 대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생각과 행적이 강조되어 지저스의 사상이 잘못 전해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유란시아서의 특징은 성경에 밝혀지지 않은 지저스의 생애와 사상을 자세하게 서술한 점입니다.

많은 미국의 기독교인들은 이 지저스의 생애가 기록된 유란시아서 4부를 읽고 유란시아서를 적극적으로 읽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고 있습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97:7.3 These Hebrew priests and scribes had a single idea in their minds, and that was the rehabilitation of the Jewish nation, the glorification of Hebrew traditions, and the exaltation of their racial history. If there is resentment of the fact that these priests have fastened their erroneous ideas upon such a large part of the Occidental world, it should be remembered that they did not intentionally do this; they did not claim to be writing by inspiration; they made no profession to be writing a sacred book. They were merely preparing a textbook designed to bolster up the dwindling courage of their fellows in captivity. They were definitely aiming at improving the national spirit and morale of their compatriots. It remained for later-day men to assemble these and other writings into a guide book of supposedly infallible teachings.

159:4.3 These writings are the work of men, some of them holy men, others not so holy. The teachings of these books represent the views and extent of enlightenment of the times in which they had their origin. As a revelation of truth, the last are more dependable than the first. The scriptures are faulty and altogether human in origin, but mistake not, they do constitute the best collection of religious wisdom and spiritual truth to be found in all the world at this time. Many of these books were not written by the persons whose names they bear, but that in no way detracts from the value of the truths which they contain. (일부 생략)

159:4.4 The scriptures are sacred because they present the thoughts and acts of men who were searching for God, and who in these writings left of record their highest concepts of righteousness, truth, and holiness. The scriptures contain much that is true, very much, but in the light of your present teaching, you know that these writings also contain much that is misrepresentative of the Father in heaven, the loving God I have come to reveal to all the worlds.

97:8.6 New Testament authors and later Christian writers further complicated the distortion of Hebrew history by their well-meant attempts to transcendentalize the Jewish prophets. Thus has Hebrew history been disastrously exploited by both Jewish and Christian writers. Secular Hebrew history has been thoroughly dogmatized. It has been converted into a fiction of sacred history and has become inextricably bound up with the moral concepts and religious teachings of the so-called Christian nations.

121:0.1 Knowing how his Master so scrupulously avoided leaving written records behind him, Andrew steadfastly refused to multiply copies of his written narrative. A similar attitude on the part of the other apostles of Jesus greatly delayed the writing of the Gospels.

121:8.11 All these writers presented honest pictures of Jesus as they saw, remembered, or had learned of him, and as their concepts of these distant events were affected by their subsequent espousal of Paul's theology of Christianity. And these records, imperfect as they are, have been sufficient to change the course of the history of Urantia for almost two thousand years.

196:2.1 The Apostle Paul later on transformed this new gospel into Christianity, a religion embodying his own theologic views and portraying his own personal experience with the Jesus of the Damascus road. The gospel of the kingdom is founded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Jesus of Galilee; Christianity is founded almost exclusively on the personal religious experience of the Apostle Paul. Almost the whole of the New Testament is devoted, not to the portrayal of the significant and inspiring religious life of Jesus, but to a discussion of Paul's religious experience and to a portrayal of his personal religious convictions. The only notable exceptions to this statement, aside from certain parts of Matthew, Mark, and Luke, are the Book of Hebrews and the Epistle of James. Even Peter, in his writing, only once reverted to the personal religious life of his Master. The New Testament is a superb Christian document, but it is only meagerly Jesusonian.

[출처] 이병철 회장 종교 질문(8). 유란시아서 답변 |작성자 들 꽃



( 질문 9 )

   종교란 무엇인가 ? 왜 인간에게 필요한가 ?


:
종교에 대하여 종교인이든 비종교인이든 제 각각 그 존재의 의미를 여러 가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무한을 갈망하는 것이 종교라든가, 인간이 자기자신과 미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과정에 종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라든가, 사람에 따라 그가 이해하는 방식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원시시대의 미신도 일종의 종교로 간주한다면, 인간은 이 땅에 존재하면서부터 시작하여 종교를 가지고 있었던 셈이며, 인간의 지능이 발전하면 할수록 더욱 종교가 인간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서,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일부 군사적으로 종교를 억압하고 있는 북한이나 중국 같은 나라를 제외하고는, 현대의 우리 생활에 종교는 큰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많은 분쟁과 갈등, 전쟁이 이 종교의 차이 때문에 발생하는 경우가 대단히 많습니다.

어쩌면 현대는 종교의 시대입니다. 특히 봉건 왕조와 일본 강점기를 겪은 우리나라의 환경은 지난 50년 동안 기독교란 새로운 종교의 도입으로, 천년 전 불교가 번창하였던 고려 시대에 이어서 또 한 번의 종교 번성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종교란 무엇인가, 왜 필요한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주위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종교와 상관없이 잘 살아가고 있으며, 또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떠나서는 숨도 쉴 수 없는 것처럼 종교를 생활화하고 있습니다.

섣불리 그 이유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유란시아서에서 언급하는 종교에 대한 문장을 알아보겠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종교의 발생과 그 변천과정, 종교는 어떤 활동을 하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 등을 자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종교와 관련되는 문장이 너무 많아서 그 대표적인 내용을 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최대한 많은 문장을 인용하였으므로 전부를 읽은 후, 종교에 대한 유란사어서의 견해를 이해바랍니다.

(92:3.9)

   종교는 문명을 육성하였으며, 사회가 연속할 수 있도록 하여 주었다.; 종교는 언제나 도덕적 경찰의 힘으로 작용하였다. 종교는 인간을 수련하고 자기를 제어하도록 하여 지혜 가 생겨나도록 하였다.

(92:7.3)

   유란시아에 있는 많은 종교는 인간을 하나님에게로 데려가며, 그리고 인간에게 하나님을 깨닫게 하여주는 만큼 그들 모두가 좋은 것이다. 어떤 집단의 종교인이라도 그들의 교리가 진정한 진리(The Truth) 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러한 태도는 확실한 심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신학적인 오만이라고 말할 수 있다.

(99:2.1)

   조직적으로 제도화된 종교는 불행하게도 재건축을 하여야만 하는 운명에 처해 있는 사회 질서와 경제적 조직의 거의 일부분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현재의 긴박한 전 세계적인 사회의 재건축과 경제 구조의 재조성에 있어서 어떤 영감을 제공할 수 없으며, 지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99:4.3)

   참다운 종교는 매일의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인 현실을 활동적으로 바로 부딪치는 의미있는 생활의 방법이다. 그러나 만약 종교가 개개인의 성격의 발전을 자극하고 성품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도록 확장하도록 하려면, 표준화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종교가 경험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도록 자극을 하고 가치를 추구하는 유인의 역할을 하려면, 판에 박힌 듯 정형화 되어서는 아니 된다. 만약 종교가 지고한 성실성을 더욱 갖도록 북돋우려면, 결코 형식화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99:5.2)

   참다운 종교는 하나님을 당신의 아버지처럼, 인간을 당신의 형제처럼 아는 것이다. 종교는 벌을 두려워하여 노예처럼 믿거나 미래에 신비로운 도움을 주는 마술을 일으키는 약속이 아니다.

(99:7.3)

   종교는 인간이 땅 위에서 용감하고 즐겁게 살아갈 수 있도록 영감을 준다.: 종교는 참을성과 열정이, 통찰력과 열의가, 동정심이 능력과, 이상이 에너지와 서로 연결되도록 한다.

(100:3.1)

   종교는 마음의 안정과 행복한 평화를 얻기위한 수단 방법이 아니다. 종교는 힘찬 봉사 활동을 하기위한 영혼을 만드는 자극이며 충동이다. 종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인간에게 봉사하는 충성스런 일에 있어서 자기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모든 것이다. 종교는 지고의 목적, 영원한 상(賞)을 얻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면 어떤 대가라도 치른다. 종교적 충성심이란 지고로 높은 것으로 이는 헌신적인 노력에 의한 완전함이 그 안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충성심은 사회적인 효과를 나타내며, 영적인 진보를 가져다준다.

(100:6.1)

   종교란 인생에 있어서 어떤 특별난 활동이기 보다는, 생활의 한 형태이다. 참된 종교는 종교인이 자신에게 그리고 모든 인류를 위하여 지고의 가치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실체에 대하여 온 마음으로 헌신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뛰어난 종교의 특징은 : 지고의 가치에 대한 의심 없는 충성과 온 마음을 바치는 헌신 이다. 지고의 가치에 대한 이 종교적 헌신은, 종교와는 상관이 없는 어머니와 자기 자식과의 관계, 그리고 어떤 신봉하는 운동에 대하여 비종교인이 바치는 열렬한 충성심에서 잘 나타내 보여지고 있다.

(100:6.5)

   그러나 진실한 종교는 생동하는 사랑이며, 봉사하는 인생이다. 종교인이 순전히 세상적이고 일시적이며, 사소하고 보잘 것 없는 것들로부터 보다 멀리하려 한다고 해서, 그는 결코 사회에서 외따로 동 떨어져 있지 않아야 할 것이며, 생활의 여유를 갖는 유머의 감각을 마땅히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종교는 인간의 존재로부터 아무것도 빼앗지 않으며, 오히려 모든 생애에 있어서 새로운 의미들을 보태어 준다.: 새로운 형태의 열정과 열망, 용기가 일어나게 하여준다. 순수한 종교는 심지어 십자군 정신까지 생기게 하며, 이는 만약 인간이 지켜야하는 충실성, 평범한 사회적 의무를 다하기 위한 영적인 정신과 성실한 헌신의 마음으로 이를 자제하지 않는다면, 대단히 위험한 것이다.

(101:0.1)

   인간이 체험하는 종교는, 진화하는 야만인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두려움에 의한 노예적인 것부터, 영원한 하나님과 자식 관계임을 뚜렷이 인식하는 문명화된 인간의 뛰어나고 훌륭한 신념의 자유에 이르기까지 넓은 범위를 이루고 있다.

(101:0.3)

   성품존재의 확신-신념인 종교는, 믿음을 가지지 않은 물질적 마음 상태에 있는, 절망에서 탄생한 피상적이며 모순된 논리에 대하여는 언제나 승리를 거둔다. 내면에서 들리는 참되고 진실한 목소리,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을 비추어주는 참된 빛”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다.

(101:1.1)

   참된 종교란 자연적인 증거에 의하여 논리적으로 정당화되고 실체화될 수 있는 철학적 믿음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니며, 또한 신비주의에 대하여 낭만적으로 추종하는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황홀경에 빠져 설명할 수 없는 감정으로 겪는 환상적이거나 신비적 체험도 아니다. 종교란 이성의 산물이 아니지만, 그러나 내면으로부터 관조를 할 때, 대체로 이성적이다. 종교는 인간 철학의 논리로부터 나올 수 없지만, 그러나 인간의 체험으로서는 대체적으로 논리적이다. 종교는 진화의 본성을 처음부터 가지고 있는 도덕적 존재가 그 인식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을 경험하는 것이다. 즉, 그것은 육신을 쓰고 있는 동안 영적인 만족을 실현함, 시간 속에서 영원한 실체를 참으로 경험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101:1.4)

   종교는 살아있으며 번성한다. 이는, 보는 것이나 느낌으로서가 아니고, 그보다는, 신념과 통찰에 의해서이다. 이는 새로운 사실의 발견이나, 또는 유별난 체험을 알아냄에 있지 않으며, 그보다, 인류에게 이미 잘 알려진 사실에서 새롭고 영적인 의미를 발견함에 있다. 가장 높은 종교적 체험은 믿음, 전통, 권위보다 이에 앞서가는 행위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종교는 숭고한 느낌과 순수하게 신비한 감정의 산물이 아니다. 그러하기 보다는, 인간의 마음 안에 살고 있는 영적 영향과 영적으로 소통하는 아주 심오하고 실제적인 체험이며, 그리고 그러한 체험을 심리학의 용어로 규정할 수 있는 한, 그것은 단지 하나님을 믿는 현실을, 순수하게 개인적 경험의 현실로서 경험하는 체험인 것이다.

(101:9.3)

   참다운 종교는 영혼 안에 있는 아득히 높고 깊은 확신인 것이며, 그 확신은 인간이 모론시아의 실체들을 믿지 않음은 잘못된 것이라고 가르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 모론시아 실체란 인간의 가장 높은 윤리적 도덕적 개념이며, 생애의 가장 위대한 가치와 우주의 가장 깊은 실체를 가장 높게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종교는 다만, 영적인 의식의 가장 높은 명령에 대하여 지적으로 복종하는 마음을 바치는 경험인 것이다.


*** 모론시아(morontia)란 현재 우리가 살고있는 물질 영역에서 벗어날 경우, 영혼이 가는 다음 세상의 영역. 모론시아 세상의 영역 다음은 영적(spirit) 영역으로서, 인간같은 성품존재가 상승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영역.

(101:10.7)

   종교는 인간이 이상적인 면에서 고립되어 있다거나 영적인 면에서 외롭다는 감각을 가지는 생각을 효율적으로 치유하여준다.: 즉 믿음을 가진 자에게 새롭고 의미있는 우주의 한 시민으로,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자격을 부여하여 준다. 종교는 인간이 그의 영혼 안에서 올바름의 빛을 알아보게 될 때, 자기 자신이 무한함의 계획과 영원함의 목적과 함께하는 존재임을 확신하게 하여준다. 그렇게 자유롭게 된 영혼은 즉시 이 새로운 우주, 그의 우주를 편안하게 느끼기 시작할 것이다.

(102:2.7-9)

   진화 과정에 있는 인간은 힘든 일을 하기를 자연히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 생애의 경험에서, 종교적 경험을 계속 더욱 많이 하여야 한다는 몰아치는 듯한 요구와 억제할 수 없는 욕구에 보조를 맞추는 것은, 영적 성장과 지적 확장, 현실적인 것에 대한 확대, 사회적 봉사에 대한 끊임없는 활동을 의미한다. 적극적으로 활동적인 성품을 떠나서는 참된 종교가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나태한 인간은 종종 참된 종교가 벌이는 엄격한 활동으로부터, 틀에 박힌 종교적 교리와 독단적 주장이 마련하는 잘못된 은신처로 물러나 의지하려는, 일종의 교묘한 자기기만을 이용하여 도피하려고 한다. 그러나 참된 종교는 살아 있는 것이다. 종교적 개념을 지적으로 고정화 시키는 것은 영적 죽음과 같은 것이다. 사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종교를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종교가 다만 사상으로 한정된다면, 이는 이미 종교가 아니다.; 그것은 다만 한 종류의 인간 철학에 불과하게 되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안정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가난한, 제대로 종교적 교육을 받지 않은 다른 부류의 영혼들이 있으며, 이들은 일상생활의 성가신 의무로부터 도피의 수단으로서, 종교를 감상적인 생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 어떤 결단력 없고 소심한 인간이, 진화하여야 하는 인생의 끊임없는 압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마음을 먹었을 때, 그들이 생각하는 데로, 종교는 가장 가까운 피난처, 가장 좋은 도피의 수단을 제공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종교의 사명은 인간을 온갖 고난의 인생을 용감하게 마주치도록, 심지어 영웅답게 대처하도록 준비시킴에 있다. 종교는 진화하는 인간에게 주어진 지고의 선물로서, 인간을 “보이지 않는 그 분을 본 것처럼 생각하게 하여 고난을 견디어” 나아가게 하여 준다. 그러나 신비주의는 흔히, 인간의 사회생활과 교섭이 이뤄지는 확 트인 무대에서 벌이는, 생동적인 종교적 인생이 주는 더욱 힘찬 활동을 즐기지 못하는 그런 인간들에게, 그들에게 주어진 인생으로부터 잠깐 물러나 쉬게하는 어떤 곳이 되기도 한다. 참된 종교는 행동 하여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인간이 종교를 실질적으로 가지고 있을 때, 또는 종교가 그 인간을 참으로 끌어안도록 허락되었을 때, 더욱 일어나는 종교의 결과일 것이다. 종교는 단순히 생각하는 것만으로, 또는 행동이 없는 느낌만으로, 만족되어지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이다.

우리는 종교가 종종 현명하지 않게, 심지어 종교답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지만, 그러나 종교는 행동하여야 한다. 도착되고 탈선한 종교적 확신이 피비린내 나는 학대를 일으켜 왔지만, 그러나 종교는 언제나 항상 어떤 일을 하고 있다.; 종교는 활기찬 것이다 !

(102:4.6)

   계시된 종교는 인간 존재를 하나로 묶는 요소이다. 계시는 역사를 하나로 통일시키며, 지리학,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 심리학을 서로 조화롭게 조정한다. 영적 경험은 인간의 우주에 있어서 진정한 혼이다.

(156:5.10)

   종교는 하나님을 알고있는 인간이 그의 진화하는 유한생명 영혼으로 겪는 순수한 영적인 체험이지만, 그러나 도덕적 능력과 영적인 에너지는 어려운 사회적 상황을 처리하고 미묘한 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함에 있어서 활용될 수 있는 막강한 힘이다. 이러한 도덕적 영적 자질은 모든 수준의 인간 생활을 보다 부유하고 의미있게 만들어 준다.

(195:5.3)

   종교는 인간에게 그의 신성하고도 영원한 최종 목적을 밝혀 나타내 보여준다.

(195:5.8)

   종교는 우주 안에서 신념, 신뢰, 확신이라고 부르는 그러한 가치들을 찾기 위하여 고안된 것이다.; 종교는 공경의 정신으로 그 목적에 이른다. 종교는 영혼을 위하여, 마음에 의하여 발견되어지는 상대적 가치와 대조적인 위치에 있는 그러한 지고한 가치를 발견한다. 그러한 초인간적인 통찰은 오직 순수한 종교적 체험을 통하여 얻어질 수 있다.

(196:3.27)

   종교는 유한생명의 상태에서 겪는 인간의 지고한 체험이지만, 그러나 유한한 언어는 신학이 종교를 참다운 종교적 체험이라고 적절하게 묘사하기를 영원히 불가능하게 만든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92:3.9 Religion fostered civilization and provided societal continuity; it has been the moral police force of all time. Religion provided that human discipline and self-control which made wisdom possible.

92:7.3 The many religions of Urantia are all good to the extent that they bring man to God and bring the realization of the Father to man. It is a fallacy for any group of religionists to conceive of their creed as The Truth; such attitudes bespeak more of theological arrogance than of certainty of faith.

99:2.1 Institutional religion cannot afford inspiration and provide leadership in this impending world-wide social reconstruction and economic reorganization because it has unfortunately become more or less of an organic part of the social order and the economic system which is destined to undergo reconstruction. Only the real religion of personal spiritual experience can function helpfully and creatively in the present crisis of civilization.

99:4.3 True religion is a meaningful way of living dynamically face to face with the commonplace realities of everyday life. But if religion is to stimulate individual development of character and augment integration of personality, it must not be standardized. If it is to stimulate evaluation of experience and serve as a value-lure, it must not be stereotyped. If religion is to promote supreme loyalties, it must not be formalized.

99:5.2 True religion is to know God as your Father and man as your brother. Religion is not a slavish belief in threats of punishment or magical promises of future mystical regards.

99:7.3 Religion inspires man to live courageously and joyfully on the face of the earth; it joins patience with passion, insight to zeal, sympathy with power, and ideals with energy.

100:3.1 Religion is not a technique for attaining a static and blissful peace of mind; it is an impulse for organizing the soul for dynamic service. It is the enlistment of the totality of selfhood in the loyal service of loving God and serving man. Religion pays any price essential to the attainment of the supreme goal, the eternal prize. There is a consecrated completeness in religious loyalty which is superbly sublime. And these loyalties are socially effective and spiritually progressive.

100:6.1 Religion is not a specific function of life; rather is it a mode of living. True religion is a wholehearted devotion to some reality which the religionist deems to be of supreme value to himself and for all mankind. And the outstanding characteristics of all religions are: unquestioning loyalty and wholehearted devotion to supreme values. This religious devotion to supreme values is shown in the relation of the supposedly irreligious mother to her child and in the fervent loyalty of nonreligionists to an espoused cause.

100:6.5 But true religion is a living love, a life of service. The religionist’s detachment from much that is purely temporal and trivial never leads to social isolation, and it should not destroy the sense of humor. Genuine religion takes nothing away from human existence, but it does add new meanings to all of life; it generates new types of enthusiasm, zeal, and courage. It may even engender the spirit of the crusader, which is more than dangerous if not controlled by spiritual insight and loyal devotion to the commonplace social obligations of human loyalties.

101:0.3 Religion, the conviction-faith of the personality, can always triumph over the superficially contradictory logic of despair born in the unbelieving material mind. There really is a true and genuine inner voice, that “true light which lights every man who comes into the world.” Religion is faith, trust, and assurance.

101:0.1 Religion,as a human experience, ranges from the primitive fear slavery of the evolving savage up to the sublime and magnificent faith liberty of those civilized mortals who are superbly conscious of sonship with the eternal God.

101:1.1 True religion is not a system of philosophic belief which can be reasoned out and substantiated by natural proofs, neither is it a fantastic and mystic experience of indescribable feelings of ecstasy which can be enjoyed only by the romantic devotees of mysticism. Religion is not the product of reason, but viewed from within, it is altogether reasonable. Religion is not derived from the logic of human philosophy, but as a mortal experience it is altogether logical. Religion is the experiencing of divinity in the consciousness of a moral being of evolutionary origins it represents true experience with eternal realities in time, the realization of spiritual satisfactions while yet in the flesh.

101:1.4 Religion lives and prospers, then, not by sight and feeling, but rather by faith and insight. It consists not in the discovery of new facts or in the finding of a unique experience, but rather in the discovery of new and spiritual meanings in facts already well known to mankind. The highest religious experience is not dependent on prior acts of belief, tradition, and authority; neither is religion the offspring of sublime feelings and purely mystical emotions. It is, rather, a profoundly deep and actual experience of spiritual communion with the spirit influences resident within the human mind, and as far as such an experience is definable in terms of psychology, it is simply the experience of experiencing the reality of believing in God as the reality of such a purely personal experience.

101:9.3 True religion is that sublime and profound conviction within the soul which compellingly admonishes man that it would be wrong for him not to believe in those morontial realities which constitute his highest ethical and moral concepts, his highest interpretation of life’s greatest values and the universe’s deepest realities. And such a religion is simply the experience of yielding intellectual loyalty to the highest dictates of spiritual consciousness.

101:10.7 Religion effectually cures man's sense of idealistic isolation or spiritual loneliness; it enfranchises the believer as a son of God, a citizen of a new and meaningful universe. Religion assures man that, in following the gleam of righteousness discernible in his soul, he is thereby identifying himself with the plan of the Infinite and the purpose of the Eternal. Such a liberated soul immediately begins to feel at home in this new universe, his universe.

102:2.7 Evolutionary man does not naturally relish hard work. To keep pace in his life experience with the impelling demands and the compelling urges of a growing religious experience means incessant activity in spiritual growth, intellectual expansion, factual enlargement, and social service. There is no real religion apart from a highly active personality. Therefore do the more indolent of men often seek to escape the rigors of truly religious activities by a species of ingenious self-deception through resorting to a retreat to the false shelter of stereotyped religious doctrines and dogmas. But true religion is alive. Intellectual crystallization of religious concepts is the equivalent of spiritual death. You cannot conceive of religion without ideas, but when religion once becomes reduced only to an idea, it is no longer religion; it has become merely a species of human philosophy.

102:2.8 Again, there are other types of unstable and poorly disciplined souls who would use the sentimental ideas of religion as an avenue of escape from the irritating demands of living. When certain vacillating and timid mortals attempt to escape from the incessant pressure of evolutionary life, religion, as they conceive it, seems to present the nearest refuge, the best avenue of escape. But it is the mission of religion to prepare man for bravely, even heroically, facing the vicissitudes of life. Religion is evolutionary man's supreme endowment, the one thing which enables him to carry on and " endure as seeing Him who is invisible. " Mysticism, however, is often something of a retreat from life which is embraced by those humans who do not relish the more robust activities of living a religious life in the open arenas of human society and commerce. True religion must act. Conduct will be the result of religion when man actually has it, or rather when religion is permitted truly to possess the man. Never will religion be content with mere thinking or unacting feeling.

102:2.9 We are not blind to the fact that religion often acts unwisely, even irreligiously, but it acts. Aberrations of religious conviction have led to bloody persecutions, but always and ever religion does something; it is dynamic!

102:4.6 Revealed religion is the unifying element of human existence. Revelation unifies history, co-ordinates geology, astronomy, physics, chemistry, biology, sociology, and psychology. Spiritual experience is the real soul of man's cosmos.

156:5.10 Religion is the exclusively spiritual experience of the evolving immortal soul of the God-knowing man, but moral power and spiritual energy are mighty forces which may be utilized in dealing with difficult social situations and in solving intricate economic problems. These moral and spiritual endowments make all levels of human living richer and more meaningful.

195:5.3 Religion is the revelation to man of his divine and eternal destiny.

195:5.8 Religion is designed to find those values in the universe which call forth faith, trust, and assurance; religion culminates in worship. Religion discovers for the soul those supreme values which are in contrast with the relative values discovered by the mind. Such superhuman insight can be had only through genuine religious experience.

196:3.27 Religion is man’s supreme experience in the mortal nature but finite language makes it forever impossible for theology ever adequately to depict real religious experience.




( 질문 10 )

   영혼(靈魂)이란 무엇인가 ?



: 영혼이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은 영혼이 존재함을 전제로 하고 묻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정말 영혼이 있는 것인가,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영혼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다는 의견을 내세울 것입니다. 대부분의 종교는 영혼이 존재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영혼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보여줄 수만 있다면, 당연히 무신론자는 발을 붙여놓을 수 없을 것이며, 종교에 대한 의문도 자연히 많은 부분이 해소될 것입니다. 그 만큼 영혼의 존재는 종교의 핵심입니다.

이 영혼은 인간이 부딪치는 주위의 현상을 파악하는 개념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는 관점이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즉, 인간의 마음과 정신, 혼 과 영혼, 동물의 생명 현상, 자연의 경이로움을 영적으로 이해하는 관점, 영과 교신하거나 감응하는 현상 등에 대한 관점의 차이로서 서로 다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며, 이들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규정하기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논의하고자 하는 영혼은 다만 인간이 죽은 후, 동일한 주체가 어떤 영적 형태로 지속하는 존재를 의미하는 것을 전제로 합니다.

우리는 종교를 떠나서 두 가지 관점에서 이 영혼의 존재를 긍정적으로 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하나는 오랜 역사와 관습, 주위의 인간 생활에서 영적 현상과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여 왔다는 점입니다. 그 이유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많은 사람이 오랜 기간 동안 인정하여왔다는 사실은 그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할 원인이 되기에 충분합니다.

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 존재를 부정하는 주장이 있어왔지만,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문명이 발전하면 할수록,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는 것들이, 일차적 논리로 이해되지 않아도 존재하는 것들이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는 현상은,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다고 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아 보입니다.

오늘날 많은 분야에 걸쳐서 눈에 보이지 않고 자기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해서 부정하는 것은 경솔한 판단으로 여겨집니다.

둘째는 영혼이 있음을 전제로 할 때, 인간 사회가 시간의 흐름과 더불어 더 높은 가치를 추구하면서 긍정적인 생애를 살아갈 빌미를 제공하여 줍니다. 만약 이 생애로 끝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개인의 선택에 따른 행동의 책임에 대하여 아무런 부담감이 없으므로, 방종하고 방탕할 수 있으나, 다음 생애가 있음을 전제로 함으로서 개인과 사회가 긍정적으로 발전을 할 바탕을 제공하게 됩니다. 종교를 가지고 있고 없고를 떠나서 대부분의 인간은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는 무언의 인식아래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사회는 그 바탕이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유란시아서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을 이 영혼의 성장에 두고 있습니다.

물질적인 이 세상뿐만 아니라 물질과 영의 중간 차원인 모론시아 세상, 그리고 높은 차원인 영의 영역에서도 이 영혼이 생활을 통하여 경험하며 성장하는 것이 존재의 이유이고 목적이라고 말합니다.

또한 영혼이 어떻게 어느 시점에 인간에게 생겨나고, 이것이 어떻게 성장하고, 어느 정도 성장하여야 다음 세상으로 바로 갈 수 있고, 다음 세상에서는 어떻게 그 기능을 다시 회복하는가 하는 등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아직 우리에게 생소하기에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와 기능에 대하여서만 이해할 수 있어도 아마 종교의 절반은 이해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아래 설명에서 사용되는 유란시아서 만의 전문적인 용어는 설명 상 어쩔 수 없는 용어로서, 이에 대하여 사전 지식이 없는 분에게는 양해를 구하며, 그러나 문맥상 그 의미는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0:5.10)

   영혼. 인간의 영혼은 경험으로 획득되는 것이다. 유한 생명체가 “하늘에 있는 아버지의 뜻을 행하기”로 선택을 하면, 자기 안에 함께 살아가는 영이 인간의 경험 안에서 새로운 실체의 아버지가 된다. 유한생명의 물질적 마음은 이와 같이 생겨나는 실체의 어머니이다. 이 새로운 실체의 근본은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영적인 것도 아니며--모론시아적인 것이다. 이렇게 생겨나는 불멸의 영혼은 유한생명의 죽음 후에 다시 살아나서 파라다이스로 향한 상승의 길을 시작하여야 할 운명을 가지고 있다.


*** 영혼을 형성하는 요소, 성질, 매질이 물질도 아니고, 영적인 것도 아니고, 그 중간 차원인 모론시아적인 것이라고 합니다. 이 영혼은 그 영혼의 주체가 “
아버지의 뜻“, 즉 우주에 인간이 존재하는 목적, 진선미를 추구할 때, 성장한다고 말합니다.

(5:5.13)

   성품존재가 영원히 생존하는 것은 유한생명의 마음이 선택하기에 전적으로 달려있으며, 그 결심이 유한생명의 영혼이 생존할 수 있는 가능성을 결정한다. 마음이 하나님을 믿고, 그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있으며, 조율자의 도움을 받아서, 그들 모두가 하나님을 갈망할 때, 생존은 보장을 받는다.

(7:3.2)

   영원한 아들이 영적-인력(spiritual-gravity)으로 끌어당기는 것은 생존하려고 애쓰는 인간 영혼이 상승하게 되는 원인으로서, 이는 파라다이스의 근원적인 비밀인 것이다. 참되고 순수한 모든 영적 가치와 성실하게 영적화된 모든 개인들은, 영원한 아들이 베푸는 영적 인력의 튼튼한 울타리 안에 있게 된다. 예를 들어, 유한생명 마음은 물질적 구조 기관을 가지고 그의 생애를 시작하여, 점차 진보함에 따라서 점점 덜 물질적 인력에 종속하게 되며, 이 모든 경험의 과정 동안 상대적으로 점점 더 영 인력이 끌어당기는 충동에 반응하면서, 종국에 이르러서는 거의 완전한 영 존재로서 완결자 봉사단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영-인력 회로는 인간의 영혼을 파라다이스쪽으로 정말 끌어당긴다.


*** 아래의 내용은 인간이 사망한 후 다음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과정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 존재가 연결되고 협력하여 탄생하는 영적 존재에 대한 설명을 이를 경험하지 못한 인간이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30:4.8)

   유한생명 신체의 물리적 육체는 잠자는 생존자가 재결합하는 한 부분이 아니다.; 물리적 육체는 먼지로 되돌아간다. 유한생명을 담당하는 세라핌은, 죽지 않은 영혼을 위하여 그리고 다시 돌아오는 조율자가 함께 살아가게 하기 위하여 새로운 생명의 운반체인, 모론시아 형태의 새로운 몸을 갖도록 하여준다. 조율자는 잠자는 생존자의 마음에 있던 영의 기록을 보관하는 관리자이다. 담당 세라핌은 생존자의 불멸의 영혼을, 그가 진화한 만큼의 영혼을, 그를 식별할 수 있는 다시 살아나는 개체(identity)로서 보관하고 있는다. 그리고 조율자와 세라핌 이들 둘이 그들이 맡고 있던 성품존재의 위탁물을 재결합시키면, 영혼 즉 모론시아 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과거에 있었던 성품존재의 부활로서, 새로운 개인(individual)을 이루게 된다. 영혼과 조율자가 그렇게 다시 연결되는 것, 성품존재의 요소들이 재결합하는 것을 진정한 부활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마저도 생존하는 성품존재 (personality)가 다시 그 모습을 나타내는 데 대하여 완전히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당신이 비록 그러한 복잡한 변화를 지금은 아마 결코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당신이 유한생명의 생존을 위한 계획을 거절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그 진실을 체험적으로 알 날이 올 것이다.

*** 다음의 두 문장은 지저스가 담화 도중에 언급한 영혼에 대한 설명입니다.

(132:3.6)

   식물과 동물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그들 자신과 동일한 입자를 내려보내는 방법으로 시간 속에서 살아남는다. 인간의 영혼(성품존재)은 개체가 자기 안에 살아가는 신성의 불꽃과 연결됨으로서 유한생명이 죽은 후에도 살아남으며, 그 불꽃은 영원히 죽지 않으며, 계속하여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가는 우주의 존재 위에서 인간의 성품존재가 영원하도록 작용을 한다. 인간의 영혼 안에 숨겨져 있는 씨앗은 불멸의 영이다. 영혼의 두 번째 세대는 영적으로 진보하는 존재의 성품이 발현함으로서 처음으로 계승하는 것이며, 이 신성한 존재가 그 존재의 근원인, 모든 존재의 성품적 근원, 하나님, 우주의 아버지에게 다다를 때, 오직 끝을 맺는다.

(133:6.5)

   영혼은 인간에게서 자신을 되돌아보고, 진리를 구별하며, 영을 감지하는 부분으로서, 인간 존재를 영원히 동물의 세상 수준 위로 높이 올려준다. 자아를 의식하는 것은, 의식 안에서든 그 자체로든, 영혼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자아를 인식함은 진정한 인간 자아의 깨달음으로서 인간 영혼의 바탕을 이루며, 그리고 영혼은 인간의 체험으로 얻는 생존을 위한 잠재적 가치를 나타내 보여주는 인간의 바로 그 부분이다. 도덕적 선택과 영적 성취, 하나님을 아는 능력과 그와 같이 되려는 의욕은 영혼이 지닌 특성이다. 인간의 영혼은 도덕적 생각과 영적 활동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침체된 영혼은 죽어가는 영혼이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마음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신성한 영과는 구별된다. 신성한 영은 인간의 마음이 처음으로 도덕적 활동을 함과 동시에 도착하며, 그 때 영혼이 탄생한다.


*** 영혼의 존재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함께 공부하기를 기대합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0:5.10 Soul. The soul of man is an experiential acquirement. As a mortal creature chooses to "do the will of the Father in heaven," so the indwelling spirit becomes the father of a new reality in human experience. The mortal and material mind is the mother of this same emerging reality. The substance of this new reality is neither material nor spiritual--it is morontial. This is the emerging and immortal soul which is destined to survive mortal death and begin the Paradise ascension.

5:5.13 Eternal survival of personality is wholly dependent on the choosing of the mortal mind, whose decisions determine the survival potential of the immortal soul. When the mind believes God and the soul knows God, and when, with the fostering Adjuster, they all desire God, then is survival assured.

7:3.2 The spiritual-gravity pull of the Eternal Son constitutes the inherent secret of the Paradise ascension of surviving human souls. All genuine spirit values and all bona fide spiritualized individuals are held within the unfailing grasp of the spiritual gravity of the Eternal Son. The mortal mind, for example, initiates its career as a material mechanism and is eventually mustered into the Corps of the Finality as a well-nigh perfected spirit existence, becoming progressively less subject to material gravity and correspondingly more responsive to the inward pulling urge of spirit gravity during this entire experience. The spirit-gravity circuit literally pulls the soul of man Paradiseward.

30:4.8 The physical body of mortal flesh is not a part of the reassembly of the sleeping survivor; the physical body has returned to dust. The seraphim of assignment sponsors the new body, the morontia form, as the new life vehicle for the immortal soul and for the indwelling of the returned Adjuster. The Adjuster is the custodian of the spirit transcript of the mind of the sleeping survivor. The assigned seraphim is the keeper of the surviving identity--the immortal soul--as far as it has evolved. And when these two, the Adjuster and the seraphim, reunite their personality trusts, the new individual constitutes the resurrection of the old personality, the survival of the evolving morontia identity of the soul. Such a reassociation of soul and Adjuster is quite properly called a resurrection, a reassembly of personality factors; but even this does not entirely explain the reappearance of the surviving personality. Though you will probably never understand the fact of such an inexplicable transaction, you will sometime experientially know the truth of it if you do not reject the plan of mortal survival.

132:3.6 Plants and animals survive in time by the technique of passing on from one generation to another identical particles of themselves. The human soul (personality) of man survives mortal death by identity association with this indwelling spark of divinity, which is immortal, and which functions to perpetuate the human personality upon a continuing and higher level of progressive universe existence. The concealed seed of the human soul is an immortal spirit. The second generation of the soul is the first of a succession of personality manifestations of spiritual and progressing existences, terminating only when this divine entity attains the source of its existence, the personal source of all existence, God, the Universal Father.

133:6.5 "The soul is the self-reflective, truth-discerning, and spirit-perceiving part of man which forever elevates the human being above the level of the animal world. Self-consciousness, in and of itself, is not the soul. Moral self-consciousness is true human self-realization and constitutes the foundation of the human soul, and the soul is that part of man which represents the potential survival value of human experience. Moral choice and spiritual attainment, the ability to know God and the urge to be like him, are the characteristics of the soul. The soul of man cannot exist apart from moral thinking and spiritual activity. A stagnant soul is a dying soul. But the soul of man is distinct from the divine spirit which dwells within the mind. The divine spirit arrives simultaneously with the first moral activity of the human mind, and that is the occasion of the birth of the soul.

[출처] 이병철 회장의 종교 질문 (10), 유란시아서 답변|작성자 들 꽃



( 질문 11 )

   종교의 종류와 특징은 무엇인가 ?


: 종교의 종류와 특징을 논하는 것은 지식과 상식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위키피디아 사전에서 분류한 종교의 종류를 참고로 아래에 요약하여 싣습니다.

1. 세계 4대 종교 인구 비율.

( 통계의 근거가 애매하지만, 참고로 합니다. )

Christianity 22 억

Islam 15 억

Buddism 10 억

Hinduism 10 억

2. 발생 근원에 따른 종교 분류

1) Abrahamic (유대 민족 조상 아브라함에서 시작)

- Judaism (유대교)

- Christianity : Catholic Church (가톨릭)

: Protestant (개신교)

: Eastern Christianity (동방정교)

- Islam (이스람교)

- Bahai Faith ( 바하이. 19c 발생. Judaism, Christianity, Islam 통합 수렴)

2) Indian (인도에서 발생)

- Hinduism (힌두교)

- Jainism (자이나교)

- Buddism (불교)

- Sikhism (시크교)

3) Iranian (이란에서 발생)

- Zoroastrianism (조로아스터교)

- Mandaism (만다교)

- Kurdish (쿠르드교)

4) 민족 종교

- 아프리카 전통종교

- 아메리카 고대 종교 : 아즈카. 잉카.

- 중국 : 유교. 도교. 등

- 한국 : 천도교 등

- 일본 : 무속신앙 등

5) New Movement (새로운 종교)


*** 기독교는 종교를 자연 종교와 계시 종교로 구분하며, 그 이유는 유대교로부터 시작한 기독교는 유일신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에게 내려주어진 종교임으로, 즉 계시된 종교이기 때문에 원시시대부터 자연적으로 발생한 다른 종교와는 구별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유란시아서도 계시종교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하늘 존재들이 직접 그 책의 내용을 전달하였다고 설명하기 때문입니다.

유란시아서는 종교의 발생 순서에 따라서 다음과 같이 분류하였습니다. (92:6.2)

- Hinduism (힌두교)

- Hebrewism (히브리교)

- Buddism (불교)

- Confucianism (유교)

- Taoism (도교)

- Zoroastrianism (조로아스터교)

- Shinto (일본 신토교)

- Jainism (자이나교)

- Christianity (그리스도교)

- Islam (이스람교)

- Sikhism (시크교)



( 인용 유란시아서 영어 원문 )

92:6.2 On Urantia, evolutionary and revelatory religion are progressing side by side while they blend and coalesce into the diversified theologic systems found in the world in the times of the inditement of these papers. These religions, the religions of twentieth-century Urantia, may be enumerated as follows:

Hinduism—the most ancient.

The Hebrew religion.

Buddhism.

The Confucian teachings.

The Taoist beliefs.

Zoroastrianism.

Shinto.

Jainism.

Christianity.

Islam.

Sikhism—the most recent.



( 질문 12 )

   천주교를 믿지 않고는 천국에 갈 수 없는가 ?

   무종교인, 무신론자, 타종교인들 중에도 착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은 죽어서 어디로 가는가 ?



: 이 질문은 특정 종교에 대한 질문으로서 직접적인 답변은 삼가하는 것이 옳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종교의 역사를 뒤돌아봄으로서 이에 대한 대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점에 있는 많은 종교들 가운데 기독교 계통이 인류에게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이 기독교 계통은 앞의 질문과 답변에서 짚어본 것처럼, 유대민족의 유일신 유대교를 바탕으로 하여 지저스 크라이스트가 모든 가르침을 전함으로서 시작된 종교로서, 초기에 로마 시대의 박해를 거친 후 로마의 정통 종교가 되면서 카톨릭으로 확립되었습니다. 물론 그 때 종교의 명칭이 카톨릭은 아니었으며 나중에 개신교가 생기면서 상대적으로 카톨릭이란 이름을 얻었을 것입니다.

이후 카톨릭이 군림하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 16 세기 독일의 마틴 루터가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면서 개신교가 생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 이후는 점차 개신교가 주력 세력이 됨으로서 카톨릭은 크게 사양길을 걸었다가, 근세에 이르러 개신교마저 수많은 종파로 나누어지면서 대중의 신임을 잃게 되자, 다시 카톨릭이 부흥하는 힘을 부분적으로 얻고 있습니다.

유럽인을 기준으로 본다면, 중세 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카톨릭 성당을 드나들었으나, 개신교가 생기면서 성당의 자리가 텅 비면서 개신교의 교회가 성황을 이루었다가 이 마저도 현세에서는 시들하여 대중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음에 따라 종교의 생활이 점차 다양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이 기독교와 관련하여서는 유럽인들과는 다른 문명권에 있다가 이조 말엽부터 중국을 통하여 카톨릭이 유입된 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국의 영향으로 개신교가 카톨릭과 함께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민족이 전통의 불교와 유교가 일제강압기와 전쟁을 겪으면서 그 위상을 잃게 되자 쉽게 기독교가 그 자리를 메우면서 크게 부흥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독교 계통의 성황도 유럽의 변화처럼 얼마의 세월이 지나지 않아 그 위세가 꺽일 것으로 전망이 됩니다.

근본적으로 인간에게 카톨릭이 옳으냐, 개신교가 하나님에게로 가는 유일한 길이냐고 묻는 것은 큰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카톨릭만 있었던 시점에는 그것이 유일의 길이었겠으나, 개신교가 생기면서 보다 많은 길이 열린 셈이며, 그러므로 종교는 인간이 어느 시점, 어떤 종교가 주류를 이루는 시대에 살고 있는가, 나아가 어떤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서 태어나느냐에 달려있는 것이지, 어느 종교가 옳으냐 어느 종파가 이단인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제한된 시간과 장소에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인간에게는 결정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 것으로 판단됩니다.

다만 앞의 글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의 서로 다름이나 종파의 갈라짐이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그가 살아가는 경험의 삶을 통해서 얼마나 그의 혼이 긍정적으로 성장하는 가, 우주의 목적인 진선미를 향한 가치있는 생활을 하였고 그러한 가치를 추구하는 열정과 의지를 얼마나 꾸준히 가지고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존재의 앞날을 결정할 것으로 판단합니다.

[출처] 이병철 회장의 종교 질문. 유란시아서 답변 (12)|작성자 들 꽃



( 질문 13 )

   종교의 목적은 모두 착하게 사는 것인데, 왜 천주교만 제 1 이고,

   다른 종교는 이단시하나 ?



: 위 질문은 질문자의 생각이 천주교가 기독교의 가장 중추적인 역할을 하는 으뜸가는 종파로 인정하고 의문을 제기한 질문입니다.

객관적으로 보면, 모든 종교는 천주교뿐만 아니라 개신교도 이스람교도, 다른 모든 종교들도 자신들의 종교가 제일이며, 진리이며, 영생을 위한 종교라고 믿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는 어느 종교가 진리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이기보다는, 인간의 성격이 지닌 근본적인 한계이자 약점에 의한 문제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마치 자기가 사귀는 애인이 최고이고, 자기의 자식이 최고이듯이, 자기의 사상과 종교가 절대적으로 옳다고 집착하는 인간의 편협성 때문에, 다른 종교는 모두 잘못이고, 천국에 갈 수 없는 이단이라고 치부하는 편견에 따른 것입니다.

이러한 편협성이 인간의 영적 성장에 있어서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이러한 장애물을 넘어서는 자만이 다음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음은 인간이 지닌 숙명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깨달음을 통하여 이 장애를 넘으면 큰 발전이 있을 것이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그가 속한 사회가 발전하여 그 단계를 넘어설 때, 함께 장애를 극복하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편견을 벗어나는 자만이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 질문 14 )

   인간이 죽은 후에 영혼은 죽지 않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간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 ?



: 영혼에 관한 문제는 질문 (10)에서 이미 다루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대부분의 종교가 믿는 교리 중의 하나로 알고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상식적인 지식에 의하면, 모든 기독교는 인간이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를 믿으면 죽은 후 그의 영혼이 천국으로 가게 되며, 믿지 않으면 사탄이 다스리는 지옥으로 가서 불의 고통을 영원히 받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천국과 지옥에 덧붙여 특별히 연옥이란 특수한 영역을 설정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일시적으로 머물면서 죄를 씻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불교에도 극락과 지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기독교는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만, 불교는 다시 다른 생애를 여러 차례 살 수 있는 환생을 믿으며, 이 환생의 굴레를 벗어나야 극락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교리에 대하여 일부 종교 철학자들은 인간이 선악을 전제로 하여 천국과 지옥을 만들었으며, 나아가 종교에 대한 두려움과 복종을 유도하기 위하여 천국과 지옥이 더욱 구체화 되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성경의 경우, 천국은 명확하게 서술하고 있으나, 지옥에 대하여는 많이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특히 예수가 지옥을 언급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을 절대시하는 여호와의 증인 같은 종파는 지옥이 없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카톨릭과 기독교, 이스람교를 함께 수렴하고 있는 바하이교의 경우도 지옥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인간이 죽은 후 영혼이 갈 수 있는 길의 가능성을 네 가지로 밝히고 있습니다.

(112:5.10)

   영적으로 우주적으로 보다 진전을 이룬 유한생명이 사망하면, 그들은 맨션세상으로 곧 바로 나아간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규정은 개인적으로 세라핌 수호자가 배정되어진 인간에게 적용된다. 이외의 다른 유한생명들은 그들에 관련된 모든 사건의 판결이 완결되는 시기까지 보류되어 기다렸다가, 판결이 내려진 이후에 맨션세상으로 나아가게 되거나, 아니면 현재의 행성 섭리시대의 종말 시기에 단체로 다시 성품존재화 되어지는, 잠자는 생존자의 부류에 배정되어진다.


: 위 설명을 정리하면, 첫째는 영혼이 어느 수준 이상(심령 회주 3 단계)의 성장을 이룬 후 사망할 경우 다음 세상으로 바로 가게 되며, 두번째는 만약 그러한 수준에 이르지 못하였을 경우, 사망 후 그 존재의 수준 상태를 재점검한 후 다음 세상으로 갈 자격이 될 경우 가게되며, 세번째는 바로 판결을 받을 수준이 되지 못하면 자기도 감지하지 못하는 수면상태에 있다가 그 행성을 판결하는 일정한 섭리시대의 말에 판결을 받은 후 다음 세상으로 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지막 네번째는, 위의 인용문에는 포함되어있지 않지만, 만약 인간 영혼의 성장이 아주 미미하고 그가 그의 의지로 다음 세상으로 갈 것을 희망하지 않을 경우, 그 존재는 이 세상에 아예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소멸되게 됩니다. 다만 그 존재가 이 생애 동안 이룩한 가치는 하늘 존재가 수집하게 됩니다.

영혼이 어느 수준 이상 성장을 이루어 바로 다음 세상으로 갈 경우에도, 사망으로 그 영혼에게 어떤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니고, 현재 있던 그대로 그 상태의 존재가 다음 세상에서 생존을 계속한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가 말하는 사후 세계는 첫 단계가 모론시아 성질로 이루어진 맨션 세상으로서 그 안에 7 단계가 있으며, 그 다음이 영적인 성질의 세상, 그리고 마지막으로 파라다이스에 이르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한 파라다이스 다음에도 또 다른 활동의 영역이 있는 것으로 말합니다.

한편 기독교가 언급하는 천국(heaven)은 위 유란시아서의 설명 중, 맨션 세상의 첫째 세상, 또는 맨션 세상 7 단계를 의미하여 말하였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48:6.2) (15:7.5)

결론적으로 유란시아서는 인간에게 지옥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사후 세계는 인간 영혼의 성장에 따라서 결정되며, 순조롭게 성장을 할 경우 파라다이스까지 또 다른 수많은 생애를 살아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인용 유란시아 원문)

112:5.10 When the more spiritually and cosmically advanced mortals die, they proceed immediately to the mansion worlds; in general, this provision operates with those who have had assigned to them personal seraphic guardians. Other mortals may be detained until such time as the adjudication of their affairs has been completed, after which they may proceed to the mansion worlds, or they may be assigned to the ranks of the sleeping survivors who will be repersonalized en masse at the end of the current planetary dispensation.




( 질문 15 )

   신앙이 없어도 부귀를 누리고, 악인 중에도 부귀와 안락을 누리는

   사람이 많은데, 신의 교훈은 무엇인가 ?



:
부귀와 안락을 누림이 신앙과 어떤 관계를 가지고 있는가를 묻고 있습니다.

종교인들은, 특히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인간 세상의 부귀와 안락, 고난과 고통은 인간이 지닌 자유의지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며, 그 결과를 하나님이 심판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귀와 안락이 바로 행복은 아니라고 말하면서, 천국으로 가는 길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에 바탕을 둔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부귀영화와 신앙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어 보입니다. 개개인이 겪는 부귀영화를 어떻게 판정하는가도 문제이지만, 객관적인 부귀가 주관적으로는 행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며, 가난과 고난이 꼭 불행이라고 단정지울 수도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특히 한 개인의 불행과 부귀를 결정하는 요소는 상당히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 책임을 어느 누구에게 물을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한 인간이 어느 시대에, 어느 장소에, 어떤 부모에 의하여, 어떤 성품과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에 따라서, 그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의 부귀와 고난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개인의 행복과 고난은 신과 무관하다고 판단하여야 하겠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우리가 살고있는 행성과 이 행성이 속하는 여러 단위 체제 우주마다 그 영역을 다스리는 행정조직이 있으며, 이 조직이 그 영역 안의 세상을 운영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주의 전반적인 운영 방향과 목표에 따라서 한 행성을 영적 존재들이 지도하고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며, 이러한 영향에 따라서 그 행성의 사회가 변화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그러한 영향은 전체적인 사회뿐만 아니라 그러한 변화를 지원하는 인간에게도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따라서 인간과 신앙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영향력의 행사는 행성의 긍정적인 방향을 위한 것이지 어느 개인의 행복과 관계가 있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이런 관점과 관련하여, 우주의 행정 기구가 행성에 영향을 행사함과 관련된 내용이 유란시아서에 있습니다. 우리 지구 유란시아의 발전이 지체되고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늘존재들이 이를 걱정하면서 어떤 영향력을 행사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하면서 서로 의견을 묻는 내용이 책의 어느 부분에 있는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한편 유란시아서는 인간의 영적 성장이 개인의 물질적 행복과 거의 관련이 없지만, 그러나 인간적인 성공과 성취에는 도움을 준다고 설명합니다.

(11:6.19)

   우주 회주의 달성과 그리고 실제의 영적 종교적 경험 사이에는 오직 간접적인 관계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달성은 서로 주고받는 것이며 그러므로 서로 도움을 얻는다. 순수하게 영적인 발전은 행성에서의 물질적 풍요와는 아마 거의 상관이 없을지 모르지만, 그러나 회주의 달성은 언제나 인간적인 성공과 그리고 유한생명이 추구하는 성취의 가능성을 증대시켜 준다.


: 위 문장에서 말하는 회주의 달성이란, 영적인 성장에 따라 그 인간 안에 있는 심령 회주의 수준이 상승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영적 성장이 인간적인 성장과 성취, human success and mortal achievement 의 가능성을 높혀준다고 말합니다. 영적인 성장이 개인의 성장과 무관하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인용 유란시아서 원문 )

110:6.19 There is only an indirect relation between cosmic-circle attainment and actual spiritual religious experience; such attainments are reciprocal and therefore mutually beneficial. Purely spiritual development may have little to do with planetary material prosperity, but circle attainment always augments the potential of human success and mortal achievement.

[출처] 이병철 회장 종교질문 (15) 유란시아서 답변|작성자 들 꽃




( 질문 16 )

   성경에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약대)가 바늘수명에

   들어가는 것에 비유하였는데, 부자는 악인이란 말인가 ?



:
이 질문에 대하여 기존 종교는 부자라고 다 같은 부자가 아니며, 이웃과 나눔을 실천하는 부자라면 선인이 될 것이며 그리하여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의 구절 해석을 약간 우회적으로 하여 부자를 포옹하기 위한 답변으로 느껴집니다. 부자를 배척하고는 성당과 교회가 운영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해석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지저스가 이런 말을 하였다면 이 말은 부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정적으로 말한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내용에서 정확하게 어떻게 표현하였는지 모르지만,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였을 것으로 생각되지 않습니다.

먼저 성경에 기록된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마태복음 19:24-2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리라 하신대

제자들이 듣고 심히 놀라 가로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으리이까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서는 다 할 수 있느니라.


: 위와 같은 내용은 마가복음 10:25 에도 거의 같은 내용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저스께서 이러한 내용을 말씀하신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제자들의 기억과 그 기억을 전해 내려온 것을 다시 후세에 기록하는 과정에서 정확성이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위의 내용은 너무 직설적으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한 점에서 정말 그렇게 단정적으로 표현하였는지 의문이 듭니다.

이런 관점에서 지저스의 행적을 보다 자세히 전달한 유란시아서에서 이에 해당하는 내용을 알아보겠습니다.

(163:3.1-2)

   지저스께서 마타도무스와 대화를 마칠 즈음, 베드로와 여러 제자들이 지저스 주위로 모여들었으며, 그 젊은 부자가 자리를 떠나자, 몸을 돌려 사도들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부유한 자들이 하나님의 왕국에 온전히 들어가기란 얼마나 어려운 가 너희들이 보았느니라 ! 영적인 것을 공경하는 마음은 물질에 헌신하는 마음과 함께 할 수 없느니라.; 어느 누구도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음이라. 속담에 이르기를, ”이교도인이 영생을 얻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도다.“ 이말에 대해 내가 말하노니,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은, 자기 만족에 빠진 부자가 하늘 왕국에 들어가는 만큼 쉬우리라.“

베드로와 사도들은 이 말을 듣고서 너무나 놀랐으며, 놀란 나머지 베드로가 묻기를 “주여, 그렇다면 누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재산을 가진 모든 이들은 왕국 밖에 있게 되나요?” 이에 대해 지저스가 답하였다. “아니다 베드로야. 그러나 재산을 믿고 이에 매달리는 모든 자들은 영원한 길로 나아가는 영적인 생애로 들어가기가 참으로 어려우리라. 그러나 그런 경우일지라도, 인간에게 불가능한 많은 것들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손길 밖에 있지는 않느니라.; 오히려 하나님과 함께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니라.”


: 위의 대화 내용은 성경에서 말한 내용의 부족함을 채워주기에 조금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즉 처음에 낙타와 부자의 비유는 이스라엘의 속담에 바탕을 둔 것이며, 그리고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과 부자가 하늘나라에 가는 것과 같은 비중이나, 이는 부자가 지닌 일반적인 성품에 의한 것이라고 명확히 말하고 있습니다. 즉 부자들이 자기의 재산에 만족하고 이를 무엇보다도 귀중히 여기어서 영적인 생활을 천대시 하는 성향이 두드러짐으로 하늘나라에 가기가 어렵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부자들이라도
하나님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고 말하였으며, 이는 하나님 안에 있다는 말은 영적인 길을 추구함을 말하며 이에 따라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위의 자세한 기록이 지저스께서 언급한 낙타와 부자 사이의 비유를 명확하게 해명하여 줄 것으로 믿습니다. 성경은 인류에게 많은 영적인 가르침을 주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위와 같이 잘못 전해진 부분들이 있어서 지저스의 진정한 가르침을 왜곡하고 있는 내용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로 인하여 지저스의 올바른 가르침이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



( 인용 유란시아서 원문)

163:3.1 By the time Jesus had finished talking with Matadormus, Peter and a number of the apostles had gathered about him, and as the rich young man was departing, Jesus turned around to face the apostles and said: "You see how difficult it is for those who have riches to enter fully into the kingdom of God! Spiritual worship cannot be shared with material devotions; no man can serve two masters. You have a saying that it is `easier for a camel to go through the eye of a needle than for the heathen to inherit eternal life.' And I declare that it is as easy for this camel to go through the needle's eye as for these self-satisfied rich ones to enter the kingdom of heaven."

163:3.2 When Peter and the apostles heard these words, they were astonished exceedingly, so much so that Peter said: "Who then, Lord, can be saved? Shall all who have riches be kept out of the kingdom?" And Jesus replied: "No, Peter, but all who put their trust in riches shall hardly enter into the spiritual life that leads to eternal progress. But even then, much which is impossible to man is not beyond the reach of the Father in heaven; rather should we recognize that with God all things are possible."




( 질문 17 )

   이태리 같은 나라는 국민의 99%가 천주교도인데,

   사회 혼란과 범죄가 왜 그리 많으며,

   세계의 모범국이 되지 못하는가 ?



: 남모르게 종교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이병철 회장은 그의 보수적인 성향 때문에, 종교라고 한다면 정통성을 지닌 천주교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종교로 판단하였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리스도교가 역사상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아울러 교황청이 자리 잡고있는 이태리가 당연히 가장 믿음이 강한 국가인 것으로 생각하였던 그는, 이러한 신앙과 믿음의 국가가 왜 세계 여러 나라들 가운데 지도적인 국가가 되지 못하고 있는가하는 의문을 제기하였습니다.

25년 전 기업인으로서는 뛰어났으나 세계적인 흐름, 특히 종교의 동향에 대하여서 넓은 지식이 없었을 수도 있는 이병철 회장은, 1,2차 세계대전이라는 대 격변을 겪으면서 이태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이 이미 기독교에 식상하여, 오랜 역사를 지닌 화려한 장식의 성당과 첨탑의 교회 건물은 많이 남아 있으나 대부분의 시민들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관습에 따라 세례를 받은 천주교 또는 기독교인들로서,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결혼식이나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성당 문턱을 들어서지도 않는, 종교를 이미 떠난 다만 명목상의 교인들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을 수도 있습니다. 웅장한 성당들은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한 국가의 관광자원으로서 활용되고 있으며, 겨우 백발의 노인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개인적인 관점으로 역사를 되돌아 볼 때, 종교는 문명과 흥망성쇠를 같이하는 성향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로마가 유럽의 중심이었던 로마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는 로마의 번영과 함께 그 전성기를 구가하였으며, 로마 제국이 분열되면서 쇠락의 길로 접어들자 문명의 축이 프랑스와 스페인을 거쳐서 독일과 영국으로 번져갔으며, 이와 아울러 그리스도교도 그 지역과 정권에 적응하여 프로테스탄트와 성공회 등으로 그 형태를 약간 바꿔가면서 그 국가의 영향력과 함께 크게 번성하였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이들 유럽 국가들의 전성기에 이어서, 유럽의 이민자들로 이룩된 미국의 경우에도, 이민자들이 가지고 간 기독교가 미국의 번성과 함께 크게 활발하게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전 세계로 널리 퍼져나가게 되어, 그 영향의 하나로 우리나라도 기독교의 번성기를 맞이하였던 것입니다.

온갖 고난을 겪은 우리나라가 그 국력이 이제 세계의 선두적인 국가들 중 하나의 서열에 들어서면서, 우리나라 종교인들의 해외 활동 숫자는 급속도로 증가하여 단순히 파견 숫자로 본다면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이지만 인구 비율로 따진다면 미국보다 높은 세계 1위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세계 어느 구석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우리나라에서 파견된 전도사들이 열심히 현지에 적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이제 더 이상 놀랄 일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역사를 뒤돌아 볼 때, 국가의 흥망성쇠와 종교의 번영쇠락의 사이에는 깊은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2천 년대 초, 이 시대의 새로운 계시서라고 알려진 유란시아서가 현 시대에 가장 번영을 누리고 있는 미국에게 전달된 배경에도 이러한 종교와 국가 사이의 역학관계가 깔려있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미국의 번영과 함께 유란시아서가 전 세계 인류에게 널리 전파되기를 바라면서, 아울러 한국도 국력 신장과 함께 이 진리의 확대에 큰 몫을 하기를 기원합니다.




( 질문 18 )

   신앙인은 때때로 광인처럼 되는데, 공산당원이 공산주의에

   미치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



: 답변하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과 두뇌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증명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입니다. 오늘 아침 어느 신문 기사에 의하면, 청소년들이 컴퓨터 게임 중독에 빠져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본다면, 종교에 심취하거나 사상에 집념하는 인간의 정신 현상도 이러한 중독 현상의 한 가지일 경우가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식음을 거르다시피 하면서 깊은 산이나 골방에서 가부좌를 틀고 눈을 감고 진리를 추구하거나, “XX 천국 XX 지옥”이란 피켓을 높이 처들고 명동 한 가운데서 큰 소리를 지르면서 전도를 하는 신도이거나, 아니면 이병철 회장이 언급한 공산주의자들, 즉 일본 강점기의 고난을 겪으면서 우리나라의 많은 젊은 지식층이 공산주의에 열광하였으며 이들이 광복 후 적극적으로 이념을 전개하다가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대거 북한으로 들어간 소위 사상가들, 이들 사이가 어떻게 근본적으로 다른가를 증명하기가 어렵습니다.

단적으로 말하자면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종교나 이념이나 자기 주관, 판단이 고집이나 편견에 빠지지 않고 다른 사람의 주관과 생각을 존중할 수 있는 상태에 있다면 이는 정상일 것이며, 반면 자기의 믿음과 판단이 절대적이라는 생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주관을 이성적으로 판단하기를 거부하는 상태를 비정상적이라고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준마저도 잣대를 재듯이 뚜렷이 구별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상과 이상을 구분하기는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근본적으로는 그러한 정신 현상의 결과가 그 개인의 영적 성장에 기여를 하는 활동인가 아닌가, 즉 진리와 아름다움과 착하고 선함, 의로움과 사랑의 정신 등을 긍정적으로 추구하는, 높은 가치를 추구하는 행동인가 아닌가에 달렸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현상과 관련하여 유란시아서에 다음과 같은 설명이 있습니다.

(110:4.5)

   인간적임과 신성함 사이, 사람 과 사이에는 엄청난 차이가 존재한다. 유란시아의 인종들은 전기적으로 화학적으로 대단히 심하게 지배를 받고 있으며, 그들의 일반적 행동은 너무나 동물적이며, 그들의 통상적 반응은 너무나 감정적임으로서, 관조자들이 그들을 안내하고 지도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게 되어 있다. 당신네들은 용기있는 결심과 헌신적인 협조심이 너무나 결여되어 있어서, 당신들 안에 함께 살아가는 조율자들은 인간의 마음과 바로 소통하기에는 거의 불가능함을 알게 된다. 비록 그들이 진화하는 유한생명의 마음에게 새로운 진리의 섬광을 빛나게 하는 경우에도, 대부분 이러한 영적인 계시는 생명체의 판단을 잃게하여 발작적인 광신적 상태에 빠져 들게 하거나, 또는 어떤 다른 지적 격동을 유발시켜 참담한 결과를 초래하게 한다. 많은 새로운 종교와 이상한 “--주의”는 생각 조율자와의 미숙한, 불완전한, 잘못 이해된, 그리고 왜곡된 소통에 의하여 발생된다.


: 위의 내용에 따르면, 광신적 종교인과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는 사상가들은 인간의 영적 성장을 위하여 인간 안에 함께하는
생각 조율자가 주는 영감의 자극을 잘 못 받아들여서 이상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발전을 위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으로 이해는 되지만 안타까운 인간의 약점입니다.

정신의 세계는 역설과 아이로니가 있는 것이 우주의 현상인 것으로 이해됩니다.

이러한 망상과 집착에 빠지지 않으려면, 자기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관조하여 잘못된 생각과 습관을 고칠 수 있는 여유를 가져야 할 것이며, 주위의 현상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지적인 현명함과 영적인 가치를 기준으로 대처할 수 있는 자세를 가짐이 중요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진정한 종교생활은 정상적인 생활에 바탕을 두어야 합니다.



(인용 유란시아 원문 )

110:4.5 There exists a vast gulf between the human and the divine, between man and God. The Urantia races are so largely electrically and chemically controlled, so highly animallike in their common behavior, so emotional in their ordinary reactions, that it becomes exceedingly difficult for the Monitors to guide and direct them. You are so devoid of courageous decisions and consecrated co-operation that your indwelling Adjusters find it next to impossible to communicate directly with the human mind. Even when they do find it possible to flash a gleam of new truth to the evolving mortal soul, this spiritual revelation often so blinds the creature as to precipitate a convulsion of fanaticism or to initiate some other intellectual upheaval which results disastrously. Many a new religion and strange " ism " has arisen from the aborted, imperfect, misunderstood, and garbled communications of the Thought Adjusters.




( 질문 19 )

   천주교와 공산주의는 상극이라고 하는데, 천주교도가 많은

   나라들이 왜 공산국이 되었나 ?

      예 : 폴란드 등 동구제국, 니카라구아 등



: 위의 질문은 종교와 정부 체제, 구체적으로 천주교와 공산주의의 관계에 대하여 묻고 있습니다.

중세 유럽이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시민 의식 수준이 향상되자, 왕권주의가 차례로 쇠퇴하게 되었으며, 이 시기에 대두한 공산주의 사상이 쏘련을 비롯한 동구권의 여러 나라에서 정권을 장악하게 된 것이 동구의 공산화였습니다.

따라서 동구권의 공산화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의 시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산물이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산물이 오늘날 또 다른 시대를 맞으면서 이미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으며, 현재는 대부분의 공산주의 국가들이 그 정부 형태를 바꾸어 수정 사회주의로 전환하거나, 아니면 민주주의로 바뀌어 가고 있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이러한 시대적 변화가 일어나기 전에 타계하였음으로 위와 같은 질문을 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종교와 정권은 서로의 이해관계에 따라서 서로 타협을 하거나, 활용을 하거나, 탄압을 하는 등 시대에 따라서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는 인류가 발전하는 과정에 나타날 수밖에 없는 하나의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인류가 영적으로 성장하게 되면, 그 사회 국가의 체제 형태도 아울러 발전하여 인간의 복리를 위한 안정적인 형태로 나아갈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인류는 그러한 발전의 초기 단계를 겨우 지난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유란시아서는 인류의 문화와 문명, 영적 성장이 최고 수준에 이르는 단계를 “빛 과 생명” (light and life)의 시대라고 이르면서, 언젠가 인류에게 그러한 날이 다가올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 행성 유란시아는 우주에서 특별나게 지역우주의 창조자가 지저스라는 인간으로 이 땅 위에서 생애를 보냄으로서, 즉 수여함으로서, 그에 따른 혜택으로 진리의 영이 인간에게 주어지게 됨에 따라서 보다 빨리 영적인 성장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땅의 인간이 빠른 영적 성장을 이루어 빠른 시기 안에 이상적인 세상, 빛과 생명의 시대를 맞이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72:12.5)

   수여를 받은 세상 위에 진리의 영이 쏟아 부어짐으로서 그 세상의 인간 종족에게 지대한 향상을 실현할 수 있는 영적인 바탕을 마련하여 준다. 그러므로 유란시아는 법률이나 조직, 형태, 관습, 언어 등을 갖춘 행성의 정부를 보다 빨리 실현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으며 - 이러한 모든 것들은 준법의 정신아래 세계적인 평화를 수립하는데 큰 공헌을 할 수 있게 되며 그리고 언젠가는 영적으로 전진하는 참된 시대의 여명을 열어 주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시대는 행성이 유토피아를 맞이하는 빛과 생명의 시대로 들어가는 문턱이 된다.




( 인용 유란시아서 원문 )

72:12.5 The pouring out of the Spirit of Truth provides the spiritual foundation for the realization of great achievements in the interests of the human race of the bestowal world. Urantia is therefore far better prepared for the more immediate realization of a planetary government with its laws, mechanisms, symbols, conventions, and language—all of which could contribute so mightily to the establishment of world-wide peace under law and could lead to the sometime dawning of a real age of spiritual striving; and such an age is the planetary threshold to the utopian ages of light and life.




( 질문 20 )

   우리나라는 두 집 건너 교회가 있고 신자도 많은데,

   사회범죄와 시련이 왜 그리 많은가 ?



: 종교인은 자기 행동에 대한 선악과 그에 따른 영혼의 내세를 믿는 것이 기본 바탕이 되고 있음으로 비종교인에 비하여 범죄율이 낮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나 종교인은 사회 구성원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음으로, 사회적 갈등과 범죄율을 종교와 직접 연관시키는 것은 적절하지 않아 보입니다.




( 질문 21 )

   로마 교황의 결정엔 잘못이 없는데, 그도 사람인데

   어떻게 그런 독선이 가능한가 ?



: 로마 교황은 카톨릭 사제의 길로 들어선 후 오랜 종교 생활 끝에, 로마 교황청에서 추기경들이 참석자 2/3 이상의 찬성으로 선출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에서 임명하는 것도 아니고 사람인 사제들이 뽑는다는 것은 인물의 선정에 정치적인, 교파적인, 인종간의 이해관계가 당연히 영향을 끼칠 것입니다. 어떻게 선정이 되었던 교황도 인간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인간은 지식과 능력에 있어서 한계가 있으며 따라서 당연히 실수와 잘못을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교황을 Pope라 부르며 이는 라틴어 papa “아버지”에서 유래하여 약 5세기 경부터 사용된 명칭입니다. 처음 기독교를 전파한 베드로가 로마의 수석 사제로 있다가 사망한 후, 그 뒤를 이은 사제에게 “성 베드로의 대리자”라는 이름을 붙였으며, 이 명칭을 “그리스도의 대리자”라고 바꾸어 불렀다가, 뒤에 교황 “Pope"로 변경한 것입니다.

이러한 교황에게 1870년 열린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의 무오류, 즉 신적 지위를 부여하였습니다.

이 공의회는 교황직이 신적 지위를 가진 존재라고 선언하면서 그 근거로 성경에 그리스도가 직접 이 직책을 베드로와 그 후계자들에게 위임하였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마태 16:18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 즉 죽음의 힘도 감히 그것을 누르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 있을 것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려 있을 것이다"

위 성경의 내용은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본래 이름이 시몬인 제자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주면서 그의 믿음과 역할에 대하여 열쇠를 비유하여 말한 것입니다. 베드로란 그리스어로 "반석"이란 의미로서 앞으로의 종교활동에 있어서 초석이되라는 의미였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의 베드로에게 예수는 그 믿음이 얕음을 지적하면서 세번 예수를 부정할 것을 언급하기도 하였습니다. 따라서 위에 인용한 언급이 베드로에게 신적인 권한을 준 것인지, 단순히 깊은 신뢰와 부탁의 표현인지 그 내용의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으며, 또한 권한을 주었다고 해석할지라도 그 권한이 다음의 사제에게 승계된다는 근거도 희박합니다.

교황의 무오류설을 부정하는 개신고의 일부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이러한 언급을 하지 않았는데, 후세에 교황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하여 성경에 이러한 내용을 추가로 삽입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성적으로, 교황의 무오류설은 좀 지나친 주장입니다. 지난 2천 년 간 일어난 교황의 역사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중세 한 때 지동설을 주장하는 과학자를 교황이 처벌하기도 하였으며, 왕권과 힘겨루기를 벌리다가 온갖 수모를 겪기도 하였으며, 위엄이 넘치는 화려한 성당을 건축하려고 면죄부를 판매하기도 하였으며, 최근에는 성경의 창세기 교리에 따른 절대적 창조론이 과학과 정면으로 상치되자 한발 물러서서 진화론을 일부 수용하기도 하는 등, 교황의 판단과 행동도 시대가 지나면 잘못임이 드러나기도 하고, 그 태도를 바꾸기도 하였습니다.

종교적인 생활과 헌신을 통하여 진리를 추구하려는 적극적인 자세는 높이 평가할 수 있겠으나, 그러한 개인적인 태도를 사회 전반적인 문제의 판단과 연결시킴은 무리이며, 나아가 신격화하는 것은 지나친 우상화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교황의 무오류설은, 예수를 낳은 마리아에게는 원죄가 없으며 평생 동정녀이었다는 주장과 함께 천주교가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입니다.




( 질문 22 )

   신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수녀는 어떤 사람인가 ? 왜 독신인가 ?



:
신부나 수녀는 남녀의 차이는 있으나 종교적 이유로 독신을 지킨다는 점에서는 같은 위치에 있으므로, 이 글을 다룸에 있어서 이들을 신부로 대변하겠습니다.

역사적으로 신부, 즉 사제 제도가 기독교에 도입된 것은, 유대 민족의 구약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유대 민족은 제사를 통하여 신과 접촉하고 숭배하였으며, 이 제사를 주재하는 사제를 특수하게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사제를 그들의 부족 가운데 레위 부족으로부터 선발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 성경 레위기는 유대 민족의 제사 지내는 방법과 사제에 관한 이야기만을 구체적으로 적었습니다. 유대민족은 그들의 신인 야훼에게 곡식이나 소, 양을 바치면서 지내는 제사의 진행 방법에 대하여 엄중하였으며, 아울러 제사를 지내는 사제에 대한 규제도 대단히 엄격하였습니다. 레위기 18 장에 의하면 이러한 사제들은 ‘부끄러운 곳을 벗기지 말라“라는 말로서 여성과 멀리하고 성관계를 갖지 말 것을 규정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러한 규정을 미루어 보아 유대 민족의 사제들에게는 여성과의 성관계, 나아가 결혼까지 규제를 받은 것으로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기 기독교인들의 사제에게 꼭 독신이 요구된 것으로도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태복음 8:14 에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갔을 때, 베드로의 장모가 마침 열병으로 앓아누워 있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장모가 있었다는 것은 결혼을 하였다는 의미입니다. 베드로가 태어난 시기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AD 64년에 순교하였으므로, 어부인 그가 예수를 만났을 때는 아마 20대였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언제 결혼을 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뿐만 아니라 다른 사도들도 결혼 생활을 유지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결혼에 대하여 크게 거부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1074년 천주교 교황 그레고리 7세는 결혼한 사람은 사제가 될 수 없으며 사제는 평생 독신을 유지하도록 공식적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아마 베드로 이후 사제가 미사를 올리는 전통이 유대민족의 사제 정신과 연결되면서 독신을 강조하게 되었으며, 특히 예수를 위대한 사제로 판단하는 천주교는 예수가 독신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 뒤를 잇는 사제도 당연히 독신으로 살아야 한다고 믿게 되었던 것으로 판단이 됩니다. 또한 이 시기에 교회의 권한과 왕권 사이에 서로 힘겨루기를 하면서 사제의 권위와 권한을 대외적으로 높이기 위하여 독신주의를 강화하였을 것으로도 추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로마 교황청의 이러한 규정에도 불구하고 동방 정교는 그 정책을 약간 달리하여, 결혼한 신자도 신부가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부는 주교가 될 수 없으며, 아울러 배우자의 사망으로 독신이 된 후 재혼도 할 수 없게 규정하였습니다.

로마 교황청이 만든 이러한 규정은 시대를 지나면서 점점 더욱 강화되었으며, 신부가 되려는 신도는 오랜 기간에 걸쳐서 여러 가지 교육과 사제서품 및 종신서원 등의 어려운 수도사의 과정을 거친 후 겨우 신부가 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과정을 거쳐서 일단 신부가 되면 그 사람의 모든 생활과 노후까지 철저히 보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만약 신부가 된 후 교리를 위반하고 결혼을 하게 되면, 교회는 그러한 자에 대하여 하나님과의 약속을 배반하였을 뿐만 아니라 간음죄까지 저질렀다는 심판을 내려, 고백성사와 성체의식 등 모든 교회 활동의 참여를 금지하고, 신자의 자격마저 박탈하여 추방하고 있습니다.

천주교의 교리와 방침을 비판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진리를 찾고 하나님을 향한다는 종교의 생활이 인간의 기본적인 본능과 근본적인 본성을 제약하고 부인하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의 목적인 종족의 번식과 인간 정신의 성장에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으로 판단됩니다.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은 기본적으로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이며,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려면 자식을 낳아 기르는 체험을 반드시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독신 생활을 한다는 것은 인간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45:6.4)

   생존을 계속하여야 하는 그 어떤 유한생명이나 중도자, 세라핌일지라도, 이 세상에서 진화하는 어린아이에 대하여 부모로서의 관계를 이루어보는 고귀한 체험을, 또는 그와 다른 방법으로 그와 같거나 동등한 체험을 통과하지 않고는, 파라다이스에 올라가서 아버지에게 다가가고, 그리고 완결의 봉사단에서 활동할 수 있도록 불리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는 우주 아버지와 그의 우주의 자녀라는 필수적인 개념을 이해하기 위하여 기본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경험은 모든 상승하는 자들이 경험을 통하여 훈련을 받아야 하는 필수불가결한 사항이다.

(47:1.6)

   상승하는 유한생명은 어느 누구라도, 물질 세상 위에서 또는 다음에 이어질 완결자 세상이나 제루셈 위에서, 어린아이를 키워보는 경험을-자기 자식이든 또는 아니든- 피할 수가 없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체험하는 것과 꼭 같이 명확하게 이러한 중요한 체험을 반드시 통과하여야 한다. 유란시아에서 현재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자녀의 교양이 대부분 어머니가 해야 할 사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이며 잘못이다. 자녀들은 어머니는 물론 아버지가 필요하며, 아버지는 어머니들이 겪는 것과 같은 이러한 부모로서의 체험이 필요하다.

(84:7.4)

   종교의 새로운 역할은 - 부모로서의 체험이 중요하다는 점, 우주의 시민을 낳는다는 생각, 번식이라는 특권에 대한 확대된 이해 - 아버지에게 아들을 드림이다.

(84:7.28)

   결혼은, 자녀 및 그에 따른 가족생활과 함께, 인간의 본성에 있는 가장 높은 잠재성을 일깨워주는 자극제이며, 그리고 동시에 유한생명 성품존재의 이렇게 활발하게 된 속성이 밖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이상적인 길을 마련하여 준다. 가족은 인간이란 종자가 생물학적으로 존속하도록 하게 한다. 가정은 자연적으로 마련된 사회적인 장소로서 그 안에서 성장하는 자녀들이 혈육의 형제애에 대한 윤리도 알 수가 있다. 가족은 우애를 배우는 기초적인 단위로서, 그 안에서 부모와 자녀는 참을성. 애타심, 너그러움, 인내심 같은 교훈을 배우며, 이러한 배움은 모든 인간 사이에서 형제애를 실현하기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요소이다.

(111:4.7)

   행복과 기쁨은 내면적인 활동에 그 근거를 둔다. 당신은 참된 기쁨을 당신 혼자로서는 이를 경험할 수가 없다. 홀로 고독한 인생은 행복에 있어서 치명적이다. 심지어 가족과 국가마저도 다른 사람이나 국가와 기쁨을 나누어 가진다면, 더 많은 인생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


: 위와 같은
유란시아서의 가르침은 가족과 가정, 부모의 경험이 얼마나 인간에게 중요한지, 그러한 개념의 이해가 바로 우주에 대한 이해임을 명확하게 말하여 주고 있습니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애정관계는 우주의 핵심으로서, 이는 직접 체험하지 않고는 결코 알 수 없는 경험이라고 말합니다. 부모가 되어보지 않고는 인간에게 생명을 준 창조자 하나님 심정을 결코 알 수 없다고 단정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난 귀중한 순간을 잘못된 개념으로 헛되이 보내지 않기를 기원합니다.




(인용 유란시아서 원문 )

45:6.4 No surviving mortal, midwayer, or seraphim may ascend to Paradise, attain the Father, and be mustered into the Corps of the Finality without having passed through that sublime experience of achieving parental relationship to an evolving child of the worlds or some other experience analogous and equivalent thereto. The relationship of child and parent is fundamental to the essential concept of the Universal Father and his universe children. Therefore does such an experience become indispensable to the experiential training of all ascenders.

47:1.6 No ascending mortal can escape the experience of rearing children—their own or others—either on the material worlds or subsequently on the finaliter world or on Jerusem. Fathers must pass through this essential experience just as certainly as mothers. It is an unfortunate and mistaken notion of modern peoples on Urantia that child culture is largely the task of mothers. Children need fathers as well as mothers, and fathers need this parental experience as much as do mothers.

84:7.4 1. The new role of religion—the teaching that parental experience is essential, the idea of procreating cosmic citizens, the enlarged understanding of the privilege of procreation—giving sons to the Father.

84:7.28 Marriage, with children and consequent family life, is stimulative of the highest potentials in human nature and simultaneously provides the ideal avenue for the expression of these quickened attributes of mortal personality. The family provides for the biologic perpetuation of the human species. The home is the natural social arena wherein the ethics of blood brotherhood may be grasped by the growing children. The family is the fundamental unit of fraternity in which parents and children learn those lessons of patience, altruism, tolerance, and forbearance which are so essential to the realization of brotherhood among all men.

111:4.7 Happiness and joy take origin in the inner life. You cannot experience real joy all by yourself. A solitary life is fatal to happiness. Even families and nations will enjoy life more if they share it with others.




( 질문 23 )

   천주교의 어떤 단체는 기업주를 착취자로, 근로자를 착취당하는

   자로 단정, 기업의 분열과 파괴를 조장하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미덕을 부인하는가 ?



: 천주교의 일부 성직자와 신도들로 구성된 특정 단체가 서민과 대중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목아래 정치적인 문제나, 사회적인 이슈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질문입니다.

종교와 정치, 사회는 서로 특수한 관계에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그 관계가 상호 협력적이었거나, 배타적이었거나, 또는 중립적인 관계를 맺으며 역사는 변천하여 왔습니다.

그 변천의 결과 오늘날은 특정 종교를 국교로 정하지 않은 대부분의 국가들의 경우,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는 대신, 종교도 정치적인, 사회적인 문제에 관여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관례가 법으로 또는 대중의 인식으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종교가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으로 일반 대중뿐만 아니라 그 종교의 신도들까지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며, 그러한 간섭이나 관여에 대하여 부정적인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기업이나 자본주의의 문제는 사회와 정치와 연관된 문제이기에, 이런 관점에서 천주교의 일부 단체가 이러한 문제에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보입니다.

다만 특정 정권이 지나치게 부패하여 회복이 어려운 상태에 놓이게 되거나, 사회의 부정이 지나치게 악화되어 스스로의 자정능력을 잃었을 경우, 종교의 위치가 아니라 정의와 평등,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 본연의 위치에서 궐기하고 활동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위와 같은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라 특수한 경우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 질문 24 )

   지구의 종말은 오는가 ?



: 마지막 질문이 의미심장합니다.

이 질문에서 말하는 지구의 종말은 추정하건데 질문자가 종교와 관련된 질문을 하여왔으므로 당연히 자연과학적인 종말, 즉 화산이나 지진, 혜성과의 충돌, 태양열 폭풍 등 자연적인 재해에 의한 지구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 시대에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종교적인, 시대적인 종말을 의미하는 것으로 알고, 이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종교적, 시대적 종말론은 모든 종교가 서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제 각각 가지고 있으며, 특히 기독교는 이와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기독교와 연관된 문제만 알아보기로 하겠습니다.

기독교의 종말론은 기본적으로 유대인의 메시아(Messiah 구세주. 그리스도) 사상과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기원 1백여 년 전 로마의 속국으로 있던 유대민족은 그들이 전통적으로 믿고 있던 선민사상과 연결된 메시아 사상, 즉 구세주가 나타나서 그들의 민족을 구할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구세주로 나타난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지 못한 그들은 예수를 거짓 선지자로 몰아서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실수를 인식하지 못한 체, 예수의 사망 후 더욱 갈급하여진 유대민족은 메시아의 사상에 매달리게 되었으며, 이 사상이 AD 70 년경 메시아 운동으로 크게 사회화 되자 이를 우려한 로마군이 유대민족을 해체하고 여러 지방으로 뿔뿔이 흩어지게 하였던 것이 유대민족의 비극이 시작된 연유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민족의 메시아의 믿음, 즉 구세주가 나타남으로서 구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종말론의 사상은, 예수가 직접 인류에게 나타나서 복음을 전함으로서 실제 그러한 영적인 종말의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그 당시의 인간이 알아보지 못하여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지나친 셈입니다.

이 이후 예수의 기록을 적은 신약성경에서 사도들이 예수의 재림을 언급하면서, 재림의 시기와 연결된 종말론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이의 바탕을 제공한 예수의 재림과 인류의 종말을 적은 대표적인 내용이 마태복음 24장과 요한 계시록입니다.

이 두 기록은 마태(Matthew)와 요한(John) 두 제자가, 메시아로 나타난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민족에 대한 실망과 그 이후의 초기 기독교 시절의 고난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어느 정도 과장되어 기술되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마태복음 24장에 적힌 내용대로라면, 예수는 실제에 있어서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는 유대민족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풀었으나, 그 대신 유대민족에게 온갖 비난과 저주를 쏟아 부은 것으로 기록한 셈입니다. 인류에게 사랑을 가르치러 온 예수가 비록 자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더라도 그러한 저주를 내릴 수가 없습니다. 아마 로마의 정책으로 유대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난 뒤 이를 비관적으로 받아들인 사도들이, 예수의 단순한 지적과 예언을 너무 지나치게 과장한 면이 있는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 글의 여러 가지 표현과 내용을 볼 때, 너무나 감정적이고 유치하여 차마 예수가 한 말이라고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요한의 계시록은 그가 천사들의 도움으로 영적 세계의 현상을 본 후 기록한 것이지만, 그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설명함으로서 온갖 추측만 일어나게 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특히 당시 고난에 처한 신도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하여 예수의 재림이 곧 이루어 질 것처럼 여러 번 말한 것이 더욱 혼란을 가중시켰습니다.

계시록 1:3 등에서 “---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내가 속히 임하리라.”라고 하였으며, 마지막 글에서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라고 예수가 직접 말한 것처럼 적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들이 사실이라면, 아무리 늦어도 1,2 백년 이내에 재림이 이루어졌어야 하였겠지만, 2천년이 지나도 그러한 낌새도 없음은, 그 시대에 희망을 주기 위한 절박한 심정에서 나온 글이었다고 밖에 이해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글의 후유증은 그 이후 오랜 세월 동안 기독교인들이 어려운 시기에 처할 때마다 이 계시록에 매달리게 되어, 예수의 재림이 곧 일어날 것이며, 그리하여 최후의 심판이 내려지고, 죽은 자들은 무덤에서 깨어나며, 산 자들은 하늘로 들이어 올라갈 것이며, 이 세상의 종말이 온 후 새로운 하늘나라가 세워질 것이라는 희망과 낭설을 믿고 헤매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특히 세기말을 앞둔 시기에 이러한 풍조가 더욱 기승을 발휘하여 지난 2000년도를 전후하여 세계 여러 곳에서 종말론과 휴거론이 판을 치기도 하였습니다.

미국의 경우는 이러한 종말론의 추종자들이 집단으로 남미의 어느 나라로 건너가서 자살한 사건이 발생하여 크게 경종을 울린 적도 있으며, 현재에도 세계 곳곳에서 온갖 종말론이 횡횡하고 있습니다.

한국의 경우는 1992년 10월 28일 휴거설을 내세운 다미 선교회 사건과 재림교회 사건 등이 한 때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였으며 현재에도 대중에 알려지지 않은 채 잡다한 종말교가 암약하고 있습니다.

유럽의 경우,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믿는 추종자들은 처음 1999년 종말설을 주장하다가 아무런 사건도 없이 그냥 지나가자, 이를 다시 수정하여 2012년 12월 21일 설로 바꾸었습니다. 이는 아마 현재 가장 힘을 얻고 있는 마야 예정설에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마야 종말론은 미국 허리웃의 영화업자들이 이를 영화화함으로서 더욱 세간의 주목을 받게 하였습니다.

마야 예정설이란 고대 마야문명 역법에 의하여,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을 기준으로 마야의 큰 달력 주기로 13번째 5125년이 지나는 2012년 12월 21일이 마야력의 종말로서 이 시점에 지구가, 아니 우주가 멸망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날이 되면 시간이 없어지고 인류가 사라지며, 모든 것이 없어져서 무로 돌아간다는 주장입니다. 현대의 인간이 이러한 가설을 믿는다는 것은 정말 황당한 현상입니다.

아마 최근 여러 경제적 어려움과 지구의 재난이 이러한 낭설에 더욱 귀를 기울이게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아울러 일부 맹신자들은 이 날짜와 연관시켜서, 태양계의 행성이 일렬로 늘어서게 되어 지구의 자전축이 변경을 일으키고, 백두산, 후지산, 스마트라의 산들이 화산을 일으켜 대 재난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언에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석조술이나 일부 천문학에서 뛰어난 문명을 가졌을 수는 있지만, 자기 소수의 종족. 조그만 국가의 장래도 유지하지 못하고 멸망한 고대의 마야 문명의 가설을 믿는다는 것은 지나친 미신입니다. 기독교와 관련된 세기말의 종말론에 심취하다가 이들이 모두 허구로 지나가자, 또 다른 허구에 매달리는 현상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2012년인 올해 말이 지나면 또 다른 무엇으로 새로운 종말론을 만들어낼지 궁금한 게 우리 인간의 약점입니다.

사실 기독교와 관련된 이러한 종말론 사상의 대부분은 서기 1000년 또는 2000년 등 어느 특정 년도와 연결지어서 번성하였습니다. 설령 예수의 재림이나 인류의 심판을 하는 종말이 일어나야 한다 하더라도 이러한 섭리의 시기가 어느 특정 년도에 일어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이며 억지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은 인간이 만든 시간의 단위에 불과하며, 특히 예수의 탄생 년도마저도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되는 처지에, 인간이 만들어낸 달력에 근거하여, 영적인 사건의 시기를 결정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예수의 재림이나 또는 종교적인 인류의 종말 같은 사건은 근본적으로 인류의 영적인 성장과 연결된 섭리의 사건으로서 이를 단순한 달력과 연결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잘못된 발상입니다.

한마디로, 단정적으로, 인류에게 종교적인 시대적인 종말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인류의 영적 성장에 따른 한 시대가 있을 수 있고 이를 구분할 수 있을 뿐입니다.

유란시아서 안에는 인류의 종말을 다룬 내용은 없습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진화와 진보를 계속하여 이 땅 위에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게 되어 빛과 생명의 시대를 맞이하여야 한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때문에 종말이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 인류의 영적 성장에 따라 우리 유란시아의 영역을 책임지는 영적 지도자들의 교체, 섭리시대의 변화 등은 자세히 언급하고 있습니다.

유란시아서는 예수가 이 땅에 2천년 전에 내려옴으로서 아담 이후 전개된 한 시대를 종결하였으며, 그리하여 예수가 부활하면서 그 때까지 다음의 세상으로 바로 가지 못하고 잠자고 있었던 영적 존재들을 데리고 갔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아래 글에서 언급하는 크라이스트 마이클은 지저스(예수)를 그 하늘의 지위로 부르는 이름입니다.

(30:4.4)

   크라이스트 마이클이 이 땅위에서 그의 일을 모두 마치고 높은 곳에 올랐을 때, “그가 억매여 있던 많은 무리들을 이끌고 갔다.”라고 말한바 있다. 이들 억매여 있던 자들이란 바로 유란시아에서 아담의 시기부터 주님의 부활의 날에 이르는 동안 잠자고 있었던 생존자들을 말한다.


: 한편 유란시아서는 지저스의 재림에 대하여 반드시 이 땅으로 다시 한 번 더 내려올 것이라고 책의 (114:7.13) (176:3.4) (194:4.5) 등 여러 곳에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모르며, 다른 영적인 지도자와 앞뒤 어떤 순서로 올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20:4.5)

   유란시아는 아직까지도 판관의 사명을 지니고 육체를 가지고 나타나도록 임명을 받은 아보날의 방문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파라다이스 아들이 미래에 나타나는 것과 관련하여서는, 마이클의 수여를 받은 세상은 주재의 아들이 개인적으로 보호를 하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천사들조차도 그 방문의 시기와 방법”을 알지 못하며, 이는 전적으로 그 자신의 계획과 운영에 달려있다. 그리고 당신네 세상의 경우는 마이클이 돌아오겠다고 약속을 하였기 때문에 더욱 복잡하게 얽혀 있다. 네바돈마이클유란시아에 머문 것에 대하여 잘못 이해하는 것과는 상관없이, 한가지 - 당신네 세상에 다시 오겠다고 한 그의 약속은 확실히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하나님파라다이스 아들유란시아를 방문하는 미래의 순서는 오직 시간만이 밝혀줄 수 있을 것이다.

(176:2.5)

   그러나 인간의 아들이 다시 나타나는 시기는 오직 파라다이스에 있는 위원회만이 알고 있다.; 심지어 하늘의 천사들마저도 이 일이 언제 일어날지 알지 못한다.

(176:4.3)

   두 번째로, 그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언젠가 이 세상으로 친히 다시 올 것이라고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그러나 육체를 가지고 그의 수여의 경험을 한 이 행성으로 언제, 어디로, 어떻게 방문할 것인가는 말하지 않았다. 그가 몸을 쓰고 여기에 살았을 때 육체의 눈으로 그를 볼 수 있었겠지만, 그가 다시 왔을 때는 (여러 번 오게 된다면 적어도 한 번은) 영적인 신념의 눈으로만 알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어느 기회에 그는 은근히 암시의 말을 하였다.


: 지저스께서 그가 다녀갔던 이 행성 유란시아로 다시 방문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언제 어떻게 올지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다만 그가 왔을 때 2천 년 전과는 달리 육체를 가지고 다시 태어나거나 육체의 모습을 가지고 나타나기보다는 영적인 상태로 임할 가능성이 크며, 이 경우 영적인 눈이 트인 자만이 그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위의 종말론과는 관련이 없지만, 유란시아서가 밝히는 유란시아에서 일어난, 또는 일어날 시대적 섭리에 대하여 참고로 아래에 적습니다.



행성 역사의 시대 구분
(Planetary Epochs)

유란시아서는 진화를 하는 행성은 7단계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전을 하며, 우리 유란시아의 경우는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으며, 또 진행될 것으로 전합니다.

1차 행성 왕자 이전 시대 ( pre-Planetary Prince era )

    백만년 전 최초 인류 시작부터 50만년 전 행성 왕자 갈리카스티아 도착시 까 지.

2차 행성 왕자 이후 시대 ( post-Planetary Prince era )

    50만년 전부터 4만 년 전 아담 이브 도착시 까지

3차 아담 이후 시대 ( post-Adamic era )

    4만 년 전부터 2천 년 전 지저스의 부활시 까지

4차 판관 아들 이후 시대 ( post-Magisterial era )

    지저스 이후 25,000 - 50,000 년 정도

5차 수여 아들 이후 시대 ( post-Bestowal Son era )

    10,000 - 100,000 년 정도

6차 교사 아들 이후 시대 ( post-Teacher Son era )

    1,000 년 이상으로 빛과 생명의 시대 진입 문턱. 행성 왕자행성 군주로 승진.

7차 행성 군주 시대 ( Planetary Sovereign era )

    빛과 생명의 시대



시대적 계시 전달
( Epochal Revelations)

유란시아서는 행성의 종족을 진화시키기 위하여 적절한 시기에 계시를 내려준다고 밝히고 있으며, 유란시아의 경우 다음과 같이 진행되고 있다고 전합니다.

1차 달라마시아 가르침. ( Dalamatia teachings )

    50 만년 전 칼리기스티아 예하 참모들이 시작하여 약 30만 년 간 교육.

2차 에덴의 가르침. ( Edenic teachings )

    약 4만 년 전 아담 이브에 의하여 전달.

3차 살렘의 멜키세덱. ( Melchizedek of Salem )

    약 4천 년 전 (BC 1973-1879) 이스라엘의 살렘에서 멜키세덱이 가르침.

4차 나자렛의 지저스 ( Jesus of Nazareth )

    약 2,000 년 전 지저스의 가르침

5차 유란시아서 ( Urantia Papers )

    1,955 년 미국에서 서적으로 인쇄되어 현재 전파 중.

6차 추가적인 계시

    앞으로 1000 - 몇 천 년 후 가능할 것으로 예상. ( 30:0.2 )



( 인용 유란시아 원문 )

30:4.4 It was said of Christ Michael that, when he ascended on high at the conclusion of his work on earth, "He led a great multitude of captives." And these captives were the sleeping survivors from the days of Adam to the day of the Master's resurrection on Urantia.

20:4.5 Urantia may yet be visited by an Avonal commissioned to incarnate on a magisterial mission, but regarding the future appearance of Paradise Sons, not even " the angels in heaven know the time or manner of such visitations, " for a Michael-bestowal world becomes the individual and personal ward of a Master Son and, as such, is wholly subject to his own plans and rulings. And with your world, this is further complicated by Michael's promise to return. Regardless of the misunderstandings about the Urantian sojourn of Michael of Nebadon, one thing is certainly authentic—his promise to come back to your world. In view of this prospect, only time can reveal the future order of the visitations of the Paradise Sons of God on Urantia.

176:2.5 "But the times of the reappearing of the Son of Man are known only in the councils of Paradise; not even the angels of heaven know when this will occur.

176:4.3 Second, he most certainly promised his followers that he would sometime personally return to this world. But he did not say how, where, or when he would revisit this planet of his bestowal experience in the flesh. On one occasion he intimated that, whereas the eye of flesh had beheld him when he lived here in the flesh, on his return (at least on one of his possible visits) he would be discerned only by the eye of spiritual faith.




     종교에 대한 질문과 답변을 마치며


이병철 회장이 제기한 종교의 질문에 대한 답변 연재를 마쳤습니다.

인간에게 본질적인 문제인 종교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는 것은 개인으로서는 외람되고 무리인 줄 알지만, 유란시아서란 기본적인 가르침이 뒷바침을 하여 주고 있기 때문에 감히 시도를 하였습니다.

이미 유란시아서의 내용을 알고 있는 분들에게는 이러한 답변이 받아들여지고 이해가 되겠지만,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많은 거부감이 있었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점에 대하여 천주교인이나 기독교인들에게는 이해와 양해를 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문제는 지저스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에 대한 이해의 차이입니다. 기존 종교에서 주장하는 인간의 원죄, 십자가 보혈에 의한 대속사상, 성경의 무오류설 등으로 지저스의 진정한 가르침이 왜곡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 연재에서 밝힌 간단한 답변의 글이 이러한 왜곡을 바로잡음에 조금이라도 기여하기를 기대합니다.



2012. 2. 8

들 꽃



rhqudcjf 12-03-25 08:53
답변 삭제  
고맙습니다
제가 생전에 살아서 내가 왜태어났으며 왜살며 죽으면 어디로 가는가 에대하여 많은고민을 하고살아
그해답을 못찿고 방황하다 죽었는데 선생님의 글을 읽고 보니 참으로 속이 쉬원하구료 생전에 선생님을
찾아뵙고 그책을 보았으면 나의 영혼이 축복받고 영적진보를 이루었을텐데 후회스럽군요
참으로 선생님은 위대한 영적 지도자이시군요  고맙읍니다  하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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